테니스|아직 워밍업 중입니다

PART 2. 실험 훈련 & 선별

by 수련의기록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지내며, 스스로 선택한 날들을 기록합니다. 원하는 삶은 우연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글이 독자에게 생각해왔던 것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첫 회사를 다닐 때 사장님과 약속을 하나 했다. 테니스를 배워서 아주 먼 훗날, 함께 경기를 하자는 약속이었다. 사장님은 이미 30년 넘게 테니스를 치셨으니, 내가 그만큼은 배워야 공평하지 않겠냐며 시간을 넉넉히 달라고 했다. 종목은 테니스였지만, 사실은 사장님이 아흔이 될 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그때까지 인연이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물론, 사장님이 입사한 후 1년 내내 테니스를 배워보라고 권유한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면접에서 사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았다. 이 사람은 운동하는 사람이라는걸. 예순이 넘는 나이에도 근육으로 가득한 몸을 유지하고 계셨고,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나오는 에너지가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닮고 싶었다.


빨간 윌슨 가방을 꽤 오랫동안 들고 다녔다. 테니스 가방이 뭐가 다른가 했더니 공간 활용의 끝판왕이다. 바닥에 신발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고, 등판에는 라켓을 끼울 수 있다. 양 옆에는 물통을 넣을 수 있는 그물망도 달려있다. 내부 공간은 갈아입을 옷과 수건, 모자를 넣기에 충분할 정도로 넓다. 문제는 이 가방을 메고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거다. 부피가 큰 테니스 가방을 앞으로 돌려 꼭 끌어안고 사람들 사이에 눌려있다보면 출근 전에 이미 어깨가 뻐근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장님은 매주 레슨 진도를 물으셨다. “아직 그것밖에 안 배웠어?” “어느 세월에 나를 따라오겠어.” 웃으면서 하신 말이었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 30년 남았어요. 기다려보세요.'


처음 받았던 수업은 그룹 레슨이었다. 한강변 코트에 여섯 명이 줄을 서서 라켓을 들고 있었다. 여자 라켓은 270~280그램이다. 배드민턴 라켓이 90그램 전후인걸 생각해보면 적어도 세배는 무겁다. 이 라켓의 무게에 익숙해지고 정확한 자세로 휘두를 수 있어야 공을 칠 수 있는 것이다. 의욕과는 다르게 첫 수업에서 나는 완전히 허우적댔다. 공이 맞긴 맞는데 매번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힘을 주면 홈런처럼 뜨고 힘을 빼면 네트에 걸렸다. 심지어 조금만 뛰었는데 숨도 찼다. '체력, 근력, 순발력이 모두 갖춰져야 하는 운동이었어...?' 갑자기 눈앞이 깜깜했다. 그 뒤로 지인들이 테니스 배울만 하냐고 물어보면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해 본 운동 중에 역대급으로 가장 어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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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열심히 레슨을 받았다. 잠실에서 열린 WTA 여자 테니스 대회도 구경가면서.





1년이 지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공이 바닥에 닿고 튀어 오를 때 거리감을 잡는 부분에서 큰 벽을 만난 느낌이었다. 어느 거리에서 기다려야 하는지, 언제 라켓을 휘둘러야 하는지 도통 감을 잡지 못했다. 아니 그런데, 테니스 레슨 시간은 왜 20분일까? 20분은 정말 짧다. 가볍게 공을 치며 몸을 풀고, 코치님이 잘못된 자세를 수정해 주고, 새로운 동작 하나를 배우면 끝나는 시간이다. 며칠 뒤 다시 레슨을 받으러 가면 지난 시간에 배운 동작을 기억에서 되살리다 시간이 끝난다. 아주 낮은 계단을 천천히 한걸음씩 겹쳐서 올라가는 느낌이다. 초보에서 중급으로 넘어가는 허들을 넘기기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테니스는 시간이 될 때마다 배웠다.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숙제가 되었기 때문이었는데, 아무래도 인사차 사장님께 연락을 드리면 그 마음이 증폭되는 것 같다. 여전히 주말마다 3시간씩 테니스를 치고, 동호회 사람들과의 게임에서 몇대 몇으로 이겼는지, 요즘도 전성기를 넘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신다. (최근에는 팔굽혀 펴기를 잘 할 수 있는 기구도 추천해주셨다.) 질문도 매년 똑같다. 어느정도 치냐고 물어보시면 할 말이 없다. 마음에는 있지만 자꾸 멀어지는 것, 멀어지지만 완전히 놓지는 못하는 것이 테니스다.


치앙마이에 오고 나서 문득 생각했다. 여기에도 테니스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더운 나라이니, 밖에서 하는 운동은 인기가 없지 않을까. 의문을 가지고 검색해 보니 세 곳의 테니스장을 찾을 수 있었다. '1회 레슨에 1시간, 라켓 대여가능, 코치님들이 친절해요.' 한국인들의 후기도 좋다. 집에서 가까운 두 곳의 테니스장에 바로 메시지를 보냈고 답이 빨리 온 곳으로 예약했다. 궁금하면 검색해 보기, 마음 먹었을 때 실행하기. 생각할 틈이 없을수록 시작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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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서 치기 편했던 TK Tennis 코트, 대학생 선수 코치 칭(Ching)





테니스장에 들어서자 파란 코트가 세 개 보였다. 내가 예약한 시간은 7시로 아침 햇살이 코트 위로 천천히 번지는 시간이다. 새벽에 비가 왔었는지 바닥과 테이블에 빗방울도 남아있었다. 코트장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니 멀리서 누군가 다가와 이름을 물었다. 오늘 수업을 맡은 칭이었다. 원래 오기로 했던 TK 코치가 감기에 걸려 대신 나왔다고 했다. 칭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해보니 현재 대학에서 테니스 선수로 뛰고 있는 학생이라고 했다. 20대 초반에 선수로 뛰고 있으면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시기가 아닌가?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여러 질문을 했다. 태국에서는 방콕에서 열리는 테니스 대회가 가장 크고, 내년 대회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다. 현재 활동중인 선수에게 레슨을 받다니 무척이나 기대가 됐다.


칭은 180이 넘는 키에 큰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테니스 선수들을 보통 날렵하고 마른 체형이지 않나? 경기할 때 괜찮을까? 조코비치와 페더러가 떠올랐다. 괜한 걱정이었다. 시범을 보이며 공을 칠 때마다 그의 발은 굉장히 빠르고 날렵한 스텝으로 움직였다. 테니스는 발로 치는 운동이라는 말이 맞다. 그는 스텝을 가장 먼저 알려줬다. 발이 가야 라켓의 타이밍도 맞출 수 있다고. 왼쪽 오른쪽, 앞 뒤 땀이 나도록 열심히 뛰었다.


다음으로는 공을 어떻게 치는지 배웠다. “공이 라켓에 닿는 면에 따라 소리가 달라요.” 옆에서 들어보니 정말로 소리가 달랐다. 직선으로 보낼 때, 회전을 걸 때, 잘못 맞을 때. 모두 다른 소리가 난다. “공이 튀어 오를 때를 보세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왔다가 떨어지기 직전에 기다렸다 치는 거예요.” 그의 말에 시선이 달라졌다. 공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부터 각도를 보며 어디로 올라올지 생각하게 되었고, 치기 직전까지 미세한 움직임을 따라 눈이 움직였다. 공을 치고 있다는 느낌보다 공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그렇게 안 되던 것이, 누군가의 짧은 한마디에 풀릴 수도 있구나 싶었다. 기술이 늘었다기보다는 막혀 있던 길 하나가 열리는 느낌에 가까웠다. 몇 년 동안 쌓인 시간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 시간이 이제야 제 역할을 하는 순간 같았다. 네트를 넘기기만 하던 공이 방향을 갖기 시작했고 그날 친 서브는 처음으로 상대 코트에 떨어졌다.


그 순간 문득 사장님 얼굴이 떠올랐다. 레슨 진도를 물으며 웃으시던 표정과 “어느 세월에 나를 따라오겠어.”라고 하던 말투까지. 장난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그 말은 빨리 같이 경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래도 계속 기다리고 있겠다는 뜻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늘 아버지처럼 챙겨주시던 사장님이었다. 아직은 시합을 논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실력이지만 적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뛰고 있다. 괜찮다, 아직 스무해쯤 남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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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히 기다려주세요 사장님...!




치앙마이는 내게 시간과 공간이 잠시 분리된 방 같은 곳이었다. 바깥에서는 오래 붙잡고 있어도 좀처럼 풀리지 않던 일들이, 이 안에 들어오면 빠르게 정리되곤 했다. 그래서인지 언제든 다시 점검이 필요해지면, 나는 또다시 이곳을 찾게 될 것 같다. 여기서는 다른 역할보다 나 자신에게 먼저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았지만, 그만큼 밀도는 충분했다. 나에게는 밀도 높은 수련의 시간이었다.














TK Academy Tennis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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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액: 코치에 따라 다름 (시간당 650~1000바트) 저는 700바트 냈어요. 미리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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