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사는 법

공생이라는 선택

by 두부

—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시간


나는 이제 완벽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나를 이해하려고 한다. 나는 큰 파도에 약한 사람이 아니라

잔물결을 모두 감지하는 사람에 가깝다. 그래서 남들은 그냥 지나치는 변화도 내 안에서는 신호가 된다.

누군가의 말투가 조금 달라지거나, 약속 시간이 어긋나거나,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끼어드는 순간


내 안에서는 작은 경보가 켜진다. 예전에는 그 경보를 끄려고 애썼다. 예민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고, 괜찮은 척 버티다가 결국 더 크게 무너졌다. 억지로 눌러둔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예민한 형태로 되돌아왔다.


지금은 다르게 산다. 경보를 끄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이 신호는 실제 위험인가, 아니면 오래전부터 몸에 남아 있는 반응인가. 그리고 생활을 조정한다.


나는 나를 고치는 대신, 생활의 구조를 바꾸기로 했다. 하루 일정을 빽빽하게 채우지 않는다. 만남과 만남 사이에는 일부러 빈 시간을 둔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가능성을 감안해 여유를 남겨둔다. 이건 게으름이 아니라 예민한 사람의 안전장치다.


일의 방식도 바꾸고 있다. 몰아서 해내는 방식은 나를 빠르게 소진시킨다는 걸 안다. 그래서 속도를 낮춘다. 하루에 감당할 수 있는 양을 넘기지 않는다. 성과보다 지속 가능성을 먼저 계산한다. 나는 ‘버티는 시간’을 줄이고 ‘회복하는 시간’을 늘리려 한다. 잘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예전보다 느려졌다.


그리고 그 느려짐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빨리 회복하지 못한다고 해서 실패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남들보다 오래 걸린다고 해서 틀린 방향은 아니라는 것도. 나는 이제 나를 설득하지 않는다. “괜찮아져야 한다”라고 몰아붙이지 않는다.


대신 말한다.


지금 이 속도로도 괜찮다고. 불안이 올라오는 날에는 내가 따르는 순서가 있다.


첫째, 신호를 인정한다. “지금 예민해졌구나.”

둘째, 판단을 보류한다. 지금 떠오르는 생각이 곧 결론은 아니라는 걸 안다.

셋째, 생활을 유지한다.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하고, 정해둔 루틴을 그대로 진행한다.


생각이 정리된 다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생각이 가라앉도록 둔다. 이건 극복이 아니다.

통제도 아니다. 운영이다. 완벽해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나를 한 번에 설명하지 않는다. 내 속도는 느리고, 나를 보여주는 방식은 점진적이다. 예전에는 빨리 이해받고 싶어 무리했다. 지금은 서두르지 않는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거리에서 시작한다. 내 예민함을 숨기지 않되, 과장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여전히 흔들린다. 여전히 작은 변화에도 마음이 크게 움직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기질은 없애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성질이라는 걸.


나는 더 이상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불안이 남아 있는 채로 살기로 한다. 흔들리는 채로 관계를 맺기로 한다. 예민한 채로 일을 이어가기로 한다.


나는 완벽해지지 않는다.

대신, 나와 함께 산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그 상태 그대로, 계속.


기록은 여기서 멈춘다.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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