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 내용을 내가 앞서 주장한 “물질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조종될 수 있다”는 관점과 연결해 다시 설명해 보자. 우리 주변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미세한 물질들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의 성질을 지닌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눈으로 관찰하는 순간, 다시 말해 관찰자가 개입하는 순간, 파동의 성질은 사라지고 입자의 성질만이 드러난다.
이와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이 바로 192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과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가 제시한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관찰하기 전까지 우리 주변의 미시적 물질들은 명확한 실체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확률적으로 기술되는 상태로만 존재한다. 그러다가 우리가 그것을 눈으로 보는 순간,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 즉 실체로 인식된다.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God does not play dice)”라는 말로 이러한 해석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마땅한 반론은 제시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거시적 세계에 익숙한 우리가, 마치 유령 현상처럼 느껴지는 미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코펜하겐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실체가 없던 외부 세계는 우리가 그것을 관찰하는 순간,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과감하게 해석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관점에 도달할 수 있다. 즉, 평소에는 유령처럼 무(無)의 상태로 존재하던 외부의 현상이,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수많은 입자들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열되면서 하나의 실체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일정한 규칙’이란 다름 아닌 우리의 생각, 다시 말해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믿고 해석하느냐를 의미한다. 결국, 우리가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떤 믿음을 형성하느냐에 따라, 외부 세계의 모습 또한 그에 맞게 결정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껏 어떤 책에서도 설명하지 못한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한 뇌과학적인 원리이다.
<그림 6-15>는 양자론에서 말하는 상태의 공존(superposition of states)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다. 상태의 공존이란, 우리가 눈으로 관측하기 전까지 미시 입자가 하나의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여러 가능한 상태로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를 일상의 경험에 빗대어 설명해 보자. 그림처럼 두 칸으로 나뉜 상자의 왼쪽 칸에 공 하나를 넣고 뚜껑을 덮은 뒤, 한참 후에 다시 연다면, 공은 여전히 왼쪽 칸에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거시 세계, 즉 일상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상이다. 공은 우리가 보지 않는 동안에도 분명히 한 쪽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시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다. 미시 세계의 두 칸으로 나뉜 가상의 상자 안에 있는 입자는, 우리가 관측하기 전까지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한 곳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 입자는 왼쪽에 있을 가능성과 오른쪽에 있을 가능성이 동시에 중첩된 상태(확률)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가 관측을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즉 측정이 이루어지는 순간, 입자는 왼쪽이나 오른쪽 중 한 위치에서 ‘짠’하고 존재하게 된다. 다시 말해, 관측 이전에는 여러 가능성으로 공존하던 상태가, 관측과 동시에 하나의 구체적인 상태로 결정되는 것이다. 이것이 양자론에서 말하는 상태의 공존과 관측의 핵심적인 의미다.
이처럼 미시 세계에서는 ‘보기 전에는 결정되지 않고, 보는 순간 결정된다’는 신기한 현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특성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거시 세계의 직관과는 크게 어긋나지만, 양자론의 실험적 결과들은 이와 같은 설명이 가장 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