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그림자 vs 양녕의 페르소나
세종대왕님의 마음을 분석하다
by 카사노바의 생존 심리학 Apr 2. 2026
여기서 정말 흥미로운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세종이 극단적인 페르소나의 전형이라면, 양녕은 극단적인 그림자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물론 양녕이 난봉꾼이 된 원인을 세자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찾는 작가도 있다. 『비운의 조선 프린스』라는 책에서는 양녕이 세종과 다르게 여러 비행을 한 원인을 14년 동안 계속된 통제된 세자 교육에서 찾고 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또 다른 조선 시대 최대의 비운의 세자인 사도세자가 영조의 혹독한 세자 수업을 견디지 못해 정신병에 걸린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사도세자는 무려 27년 동안이나 세자 생활을 해야만 했다).
양녕의 아버지 태종과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는 모두 세자 교육에 무척 철저했다. 아니,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 태종은 자신의 아버지인 태조로부터 반강제로 왕위를 빼앗았다. 따라서 자신의 적장자인 양녕을 어떻게든 훌륭한 왕으로 키워내고 싶었다. 영조 또한 자신의 형인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음모론에 시달렸기 때문에, 당시에는 매우 늦은 나이인 42세에 낳은 사실상의 첫째 아들인 사도세자를 어떻게든 훌륭한 왕으로 키우고 싶었다. 이러한 이유로 두 왕의 아들들은 대단히 혹독한 세자 수업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사도세자에게 많은 통제를 가했던 영조와는 달리 태종은 양녕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를 주면서 어떻게든 아들로서 품으려 한 것 같다. 따라서 14년간의 세자 수업으로 인해 양녕의 성격이 비뚤어졌다고 보기에는 어딘가 부족함이 있다. 아무튼, 이런 양녕의 비행 때문에 결국 폐세자가 되고 세종대왕이 조선의 제4대 왕으로 등극한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융 심리학을 뇌과학에 적용했을 때 페르소나의 부위는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고, 그림자의 부위는 편도체(amygdala)이다. 따라서 뇌과학적으로 봤을 때 페르소나의 전형인 세종은 전대상피질을 주로 사용한 인물이었다면, 그림자의 전형인 양녕은 편도체를 주로 사용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세종이 한반도 역사상 가장 바르게 생활한 남자였던 데 반해, 양녕은 한반도 왕족 역사상 가장 본능적으로 생활한 남자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실록을 보면서 느낀 점은, 양녕이라는 인물에게는 사회적인 가면인 페르소나가 아예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한 나라의 세자로서 그런 못된 행동들을 일삼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융의 이론에 따르면 페르소나가 없는 사람은 없다. 페르소나는 집단무의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숙명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녕대군에게도 분명 페르소나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양녕의 페르소나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바로 글씨와 그림과 같은 예술적인 부분에서였다. 확실한 친필 작품이 전해지지는 않지만, 양녕대군은 당시 명필 가운데서도 손꼽힐 만큼 뛰어난 서예 실력을 지녔으며, 그림에도 능했다고 전해진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과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숭례문 현판의 글씨를 양녕대군이 썼다는 기록이 보인다. 세자로서 자신의 동생 세종과 신하들에게까지 무시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재능은 분명 그의 인정 욕구를 채워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바로 페르소나다. 따라서 이러한 양녕의 예술적인 재능이 바로 그만의 페르소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양녕은 여색을 밝히는 어두운 그림자와 예술적인 재능이라는 페르소나를 모두 가진, 우리와 똑같은 무의식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페르소나의 화신인 세종에게는 과연 그림자가 있었을까(세종이 어두운 그림자를 가지게 된 원인은 조금 전의 설명처럼 아버지 태종 때문이다)? 양녕의 페르소나와 마찬가지로, 세종 또한 그림자라는 것이 존재했을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융에 따르면 세종과 같이 지나치게 강한 페르소나를 가진 사람의 내면에는 대단히 어두운 그림자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무척 크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인간의 정신에서 페르소나와 그림자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종의 그림자는 무엇이었을까? 기록상으로 그나마 확인 가능한 것이 바로 황희와 고약해라는 인물과의 이상한 관계와 장영실에 대한 과도한 처분 등이다(이미 설명했듯이, 인간의 그림자는 심리학의 투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청백리의 대명사인 황희에게 20년이 넘도록 정승 직을 맡긴 점이다. 기록에 따르면 황희는 뇌물이나 청탁, 심지어 사위의 살인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사실인지 논란이 있다)로 파직까지 당했던 인물이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양녕이 세자이던 때에 사사건건 세자로서 바른생활을 하라고 강조했던 세종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세종은 황희의 뛰어난 업무처리와 탁월한 대인관계 능력을 높이 평가해 끝까지 요직에 앉혔다. 이는 제아무리 세종이라 하더라도 현실적인 문제와 타협해야만 했던 그의 숨은 그림자 때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