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려는 자와 하지 말라는 자. 이 둘의 대화는 정말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그저 무의식적인 본능에 따라 욕망을 채우려는 자와, 세자로서의 체통을 강조하며 사사건건 방해를 일삼는 자 사이의 관계 말이다. 둘 사이의 이러한 대화를 본 나는 필연적으로 융이 말한 그림자의 상호 투사를 떠올렸다. 구체적으로 말해, 세종은 자신의 어두운 욕망을 과감하게 실현하는 양녕이 못마땅했을 것이다(부러웠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를 비판하는 독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과 같은 위대한 인물에게 어떻게 융이 말한 어두운 그림자가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융 심리학에 따르면, 세종처럼 외면의 행동이 너무 바르기만 하다면 내면에는 충족되지 못한 어두운 욕망이 반드시 숨어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본인은 알지 못하는 분명한 무의식이다. 특히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필요 이상으로 나를 자극한다면, 그것이 바로 그 말과 행동과 비슷한 어두운 그림자가 나의 무의식 안에 숨어 있다고 보면 된다. 세종이 양녕의 말과 행동에 화가 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녕의 그림자는 어떠했을까? 이는 세종의 그림자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된다. 타인을 불편하게 했던 양녕의 외부 모습과는 달리, 그의 그림자에는 그가 억압한 바른 마음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여기서 말하는 바른 마음이란 바로 세종의 평상시 모습이다). 이에 대해, 이 책의 다른 글을 근거로 나를 비판하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작가님은 이전 글에서, 어릴 적 가정환경에 따라 그 사람의 그림자의 밝기가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왕족으로서, 누구보다 풍족하게 살았던 세종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분명 세종은 왕족으로서 누구보다 마음 편하게 살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이 왕이 되는 과정에서 행한 여러 사건과, 세종에게 강한 왕권을 물려주기 위해 세종의 처가를 완전히 몰락시킨 사건을 고려한다면 세종의 그림자가 어두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첫째 아들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소위 적장자(嫡長子) 원칙을 깨면서까지 양녕을 폐하고 세종을 세자로 세운 일은 분명 세종의 그림자를 더욱 어둡게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종은 누구보다 자신의 아버지 태종의 잔인한 성품을 알고 있었기에, 세종 자신이 세자로서 바르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양녕처럼 똑같이 폐위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엄청난 두려움을 분명히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아버지 태종과의 관계 속에서 세종은 (본인도 모르게) 어쩔 수 없이 (폐세자가 된 양녕이 했던 여러 불량한 행실들을 태종 몰래 자신의 그림자 속에 감춤으로써 당연히) 어두운 그림자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미 설명했듯이, 우리 안의 여러 정신은 서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싸움을 벌인다. 그림자의 경우 역시 어두운 마음이 밝은 마음을 억압하여 외부로 드러날 수가 있고, 그 반대로 드러날 수도 있다. 이처럼 세종과 달리 양녕은 평소 세자다운 바른 마음을 억압하고 오직 어두운 본능에 따라서만 살았던 인물이다. 이런 양녕이 세종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이유는, 바로 세종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가 양녕에게 투사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록에 나온 세종과 양녕의 모습을 보면 정말 같은 아버지에게서 나온 형제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왜냐하면 둘의 모습이 너무나 극단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인물의 감춰진 내면의 모습을 융 심리학의 그림자를 통해 살펴본다면 무척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