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생활 사나이, 충녕

세종대왕님의 마음을 분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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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림자의 투사에 대해 살펴보자. 이미 설명했듯이, 그림자란 내 안에 숨어있는 어두운 욕망이다. 평소 그림자는 페르소나라는 가면 뒤에 숨겨져 있다가, 특정한 대상을 만나게 되면 투사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이 유독 나의 부정적인 감정, 즉 분노, 두려움, 슬픔, 혐오, 죄책감, 질투, 부러움, 수치심, 불안 등을 강하게 자극한다면, 그것이 바로 융이 말한 그림자가 투사되고 있다는 신호다. 세종 또한 인간이었기에 분명 이러한 어두운 그림자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세종실록』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세종실록』에는 유독 세종과 자주 충돌하는 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태종의 장남이자 세자였던 양녕대군이다. 기록을 보면 세종은 양녕의 세자답지 못한 행실을 수차례 지적했다. 소위 ‘바른생활 사나이’였던 세종은, 머지않아 왕위에 오를 양녕에게 세자답게 행동할 것을 여러 차례 직설적으로 충고했다. 이와 관련된 실록의 기록을 살펴보자.

태종 16년 1월 19일. 스물세 살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한창 여색에 빠져 있던 양녕이 화려한 옷차림으로 동궁을 나서고 있었다. 양녕은 주변의 신하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물었다.

“내 차림이 어떠한가?”

그러자 곁에 있던 충녕(세종)이 정색을 하고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먼저 마음을 바로잡은 뒤에 용모를 닦으시기 바랍니다.”

세종의 말에 다른 신하도 이렇게 거들었다.

“대군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저하께서는 이 말씀을 부디 잊지 마시옵소서.”

이 말을 듣자 양녕은 얼굴빛이 붉어지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박영규의 『세종대왕실록』 중 -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아무리 피를 나눈 형제라 하더라도, 머지않아 한 나라의 군주가 될 세자에게 이런 직언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훗날 보복을 당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그러나 세종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양녕이 세자로서 어긋난 행동을 할 때마다 가차 없이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훗날 이 사실을 알게 된 태종은, 혹시라도 형제간에 피를 부르는 참극이 벌어질까 두려워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세종을 보필하는 신하의 수를 일부러 줄이고, 양녕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가 세종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치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두 형제는 자주 충돌했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바른생활 사나이 세종과, 옷깃만 스쳐도 작업을 걸던 타고난 카사노바 양녕이었기 때문이다.


기록을 살펴보면 양녕이 카사노바였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른 기록을 한 번 더 보자.


태종 16년 3월 20일. 태종의 형이자 상왕이었던 정종이 여러 종친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양녕은 칠점생이라는 기생을 자신의 동궁으로 데려가려 했다. 그런데 칠점생은 양녕의 매형인 이백강의 기생이었다. 즉, 양녕이 자신의 친척의 기생에게까지 눈독을 들인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세종이 달려와 양녕을 만류했다.

“친척끼리 이같이 하는 것이 어찌 옳겠습니까?”

결국 양녕은 기생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분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너와 나는 도(道)가 같지 않아 말이 통하지 않는구나. 앞으로는 내 일에 나서지 말라!”

- 박영규의 『세종대왕실록』 중 -

양녕은 누나인 경정공주의 남편이 거느린 기생을 탐했다. 이외에도 여자 문제와 관련된 양녕의 기록은 셀 수 없이 많다. 이것만 보아도 양녕은 당시 엄격한 유교 국가였던 조선의 왕으로서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양녕의 잘못된 행실을 세종은 계속해서 제지했던 것이다.


양녕의 입장에서 세종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사사건건 자신의 행동을 문제 삼으며 입바른 소리를 해댔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제지는 본래 아버지 태종이 해야 할 몫이었다. 그러나 한 나라의 군주였던 태종이 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관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세자로서 여색을 밝힌 인물이 비단 양녕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양녕의 경우는 그 정도가 지나쳤다. 기록을 읽다 보면, 과연 사실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는 곧 왕이 될 세자라는 막강한 지위를 이용해 닥치는 대로 여색을 탐했다. 이러한 난봉꾼 같은 행실이 세종의 눈에는 결코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른 기록도 살펴보자.

태종 16년 9월 19일. 이날 흥덕사에서 양녕과 다른 대군들은 친할머니인 신의왕후의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제사가 끝나자 양녕은 평민 셋을 불러 함께 바둑을 두었다. 이 광경을 더는 참지 못한 충녕이 또다시 양녕에게 직언을 했다.

“지존인 세자로서 아래로 간사한 소인배와 놀음놀이를 하는 것도 불가한 일인데, 하물며 할머니의 기일에 와서 이러십니까?”

그러자 양녕은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너는 관음전에 가서 잠이나 자라!”

- 박영규의 『세종대왕실록』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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