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vs 태종과 수양대군)

세종대왕님의 마음을 분석하다

다음으로 아버지 태종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 세종의 또 다른 그림자를 살펴보자. 태종과의 관계는 프로이트가 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태종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이다. 태종은 이성계의 여러 아들 중 유일하게 과거 시험에 급제한 인재였다. 하지만 고려의 충신이었던 정몽주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정도전, 그리고 배다른 형제들을 죽게 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특히 본인과 아들의 친인척의 권력 비대화를 막는 일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부인인 원경왕후 민씨의 동생이었던 민무구·민무휼 형제에게 대역죄를 씌워 제거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태종은 이 두 형제를 제거할 명분을 찾던 중이었다. 그러다 세 번씩이나 세자에게 왕위를 넘긴다는 전위 파동을 일으킨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신하들은 극구 만류했다. 하지만 민씨 형제만큼은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태종은 두 형제에게 대역죄를 씌운 후 제거했다. 1409년 9월에 태종이 한 말을 살펴보자.


“내가 자식을 두어 명 뒀는데, 민무구 등이 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지난 병술년에 왕위를 사퇴하여 피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신하들의 저지를 받아 행하지 못했는데, 이 때문에 민무구는 안색에 노기를 드러냈다.”

― 박영규의 『세종대왕실록』 중 ―


‘안색에 노기를 드러냈다’고 한다. 태종 자신이 다시 왕으로 복귀하려 하자 민무구가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러했을까? 매형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민무구가 그러했으리라곤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물론 민무구의 입장에서 본다면, 치밀한 성격의 태종보다는 여색만 밝히는 양녕대군이 빨리 왕이 되기를 은근히 바랐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태종 앞에서 대놓고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는 것은 정말 억지라고 본다. 태종이 말한 민무구의 대역죄의 명분치고는 무척 초라해 보인다.


실제 원인은 따로 있었다. 이 두 형제가 당시 세자였던 양녕을 위해, (훗날 왕권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세종을 포함한 다른 왕자들을 제거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제보가 태종의 귀에 들어갔던 것이다. 진실 여부를 떠나, 유달리 외척 세력에 대한 경계심이 많았던 태종은 이를 기회 삼아 두 형제를 제거할 구실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자, 정말 궁색하게도 표정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민무구 형제의 죽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러한 외삼촌들의 죽음은 마음이 여린 세종에게 분명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후 태종은 자신의 첫째 부인이었던 원경왕후 민씨를 폐비시키려 한 적도 있다(상왕 정종의 만류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태종의 이러한 행동은 분명 세종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크게 자극했을 것이다. 하지만 태종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외척에 대한 정리를 끝내자, 이번에는 아들이었던 세종의 외척까지 정리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세종의 장인이었던 심온을 제거한 일이다. 당시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태종은 군권만큼은 물려주지 않고 본인의 손에 쥐고 있었다. 이에 대해 심온의 아우였던 심정이 불평한다는 말이 태종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결국 이 둘은 민씨 형제처럼 역모죄로 죽임을 당한다. 이후 태종은 세종의 부인이었던 소헌왕후까지 역적의 딸이라는 이유로 폐비시키려 했다. 하지만 세종의 강력한 반대로 다행히 실행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소헌왕후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모두 노비 신분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이처럼 당시 조선의 세자이자 왕이었던 세종은, 자신의 아버지 태종에 의해 부인의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어진 세종이라도 당연히 아버지 태종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종은 이러한 콤플렉스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킨다. 태종의 사후, 세종은 아버지에 의해 정비된 각종 제도를 체계적으로 완성했으며, 세계 최고의 문자인 한글을 창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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