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을 눈여겨보았을 태종

세종대왕님의 마음을 분석하다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세종의 아버지였던 태종은 무척 흥미로운 인물이다. 앞부분에서 나는 세종이 사회적인 가면인 페르소나의 전형이라면, 양녕은 어두운 그림자의 전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태종은? 태종은 흥미롭게도 페르소나와 그림자 모두의 전형이었다. 그는 마키아벨리(Machiavelli, Niccoló)가 『군주론』 17장에서 말한(잔인함과 인자함에 대하여) 이상적인 군주(페르소나와 그림자를 모두를 균형적으로 사용하는)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내가 감히 생각하기에, 훗날 세종의 왕권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외척들을 정리한 일과 간사한 신하들에게 대단히 엄격했던 태종이 없었다면, 아마도 세종이 그토록 많은 업적을 남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록을 통해 판단해 볼 때, 확실히 세종은 태종에 비해 성품이 모질지 못했다. 이 때문에 본인의 사후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에 의해 자신이 아끼던 여러 신하와 손자 단종까지 참화를 겪게 된다. 이에 대해 나는, 만약 태종 이방원이 더 오래 살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태종이 승하했을 때 수양대군의 나이는 겨우 만 4세였다. 따라서 아직 어린 나이였던 수양대군이 훗날 왕위를 찬탈할 것이라고는 태종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태종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이러한 수양대군의 야심을 어느 정도는 눈치챘을 것이라 본다. 이유는 본인이 왕위를 힘으로 쟁취했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들이나 손자들 중에서도 그런 인물이 나오지는 않을지 걱정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물론 당시 태종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는 이상 알 수는 없다).


만일 태종이 오래 살아 수양대군이 저지른 만행을 직접 눈으로 봤다면 얼마나 기가 찼을까? 사실 세종이 태종을 통해 배워야 했던 점이 바로 이 잔인함이었다. 이러한 잔인함은 강한 남성성에서 비롯된다. 남성성이란 결국 꾸준한 운동을 통한 신체 단련에서 나오는 것이다(요즘 말로 하자면 ‘테토남’ 정도일까?). 기록에 따르면 태종과 수양대군이 바로 이러한 전형적인 테토남이었다. 태종은 아버지 이성계를 닮아 운동신경이 뛰어났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좋아했으며 사냥을 즐겼다. 수양대군 역시 운동신경이 뛰어났고, 특히 체격이 크고 힘이 장사였다고 전해진다.


만일 태종이 더 오래 살았다면, 분명 수양대군의 남다른 외모를 그냥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미리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 수양대군의 야심을 눈치챘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태종은 52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사망함으로써, 자신이 가졌던 잔인함이 부족했던 세종을 홀로 남겨두게 된다. 사실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려면 태종처럼 집단무의식인 그림자에서 나오는 잔인함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페르소나를 지닌 남자였던 세종은 이 부분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 결과 태종이 그토록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만다. 이것 또한 태종에게 투사되었던 세종의 또 다른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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