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6·25 전쟁 이후의 기적적인 경제 발전인 한강의 기적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깊이 연결하여 생각해야만 한다. 나는 이를 융이 말한 동시성의 원리(Synchronicity)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싶다.
동시성의 원리란 인과관계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두 개 이상의 사건이,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로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내 생각에 우리 인생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우연적인 사건들은 사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에 의해 일어난다고 본다. 이는 다른 장에서 설명한 집단무의식의 집단적인 동조 현상 및 끌어당김의 법칙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양자론에 따르면 우리 주변의 공간은 무수히 많은 미세 입자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 두뇌 속 뉴런들의 활동으로 인해 우리의 주변에는 그에 맞는 진동이 생긴다. 그리고 이 진동은 공간을 가득 채운 다른 입자들에게 전달된다. 이후 우리의 생각의 진동을 받은 입자들 역시 진동하기 시작하며, 그 진동은 다시 이웃 입자들에게 계속 전달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생각의 진동은 먼 곳까지 전달되고, 마침내 지구 전체를 진동시키게 된다. 또한 이렇게 전달된 우리의 생각의 진동은 그에 맞는 입자들의 모임을 다시 끌어당기게 된다. 결국 규칙적인 에너지의 형태(E)인 이 입자들의 모임은 아인슈타인이 말한 질량과 에너지의 상호 변환의 법칙인 ‘E=mc²’에 따라 최종적으로 눈에 보이는 물질(m), 즉 사건으로 바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각자에게는 우연으로 보이겠지만, 절대로 우연이 아닌 과학적인 필연인 동시성 현상의 과학적인 원리다(또한 다른 장에서 설명한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설명이기도 하다).
융에 따르면 동시성의 원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시대를 초월하며 공간을 가로지른다. 대한민국의 한강의 기적은 사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로 인해 동시적으로 일어난 필연적인 사건일 뿐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만약 세종대왕의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6·25 전쟁 이후 그토록 빠르게 경제 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쉽고 고유한 문자인 한글이 있었기에, 우리 국민들의 교육열이 뜨겁게 올라갔고, 이로 인해 다른 전쟁 피해국에 비해 정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세종대왕의 동시성의 원리다.
만일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를 처리하는 과정을 두뇌 MRI 장비로 관찰한다면, 분명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의 처리 과정이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실제로 유튜브에는 한글 사용자와 다른 언어 사용자들이 동일한 문장을 얼마나 빨리 입력하는지 비교하는 내용도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이유는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인간의 구강 구조에 맞게 과학적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한글의 기본 자음 글자들은 입술, 혀, 목구멍 등의 모양을 형상화했고, 모음 글자들은 천지인(天地人)을 상형화한 것이다. 이는 한글의 발음 원리와 체계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한글 사용자는 영어 사용자(기타 언어 사용자)보다 분명 두뇌에서 사용하는 에너지가 극히 적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영어 사용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즐겁게 독서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한글의 우수성으로 인해 기적의 경제 발전인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1446년 9월 10일, 세종대왕은 당시 신하들이 격렬히 반대하던 자신의 발명품인 한글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랏〮말〯싸ᆞ미〮
中듀ᇰ國귁〮에〮달아〮
文문字짜ᆞ강〮와〮로〮서르사ᆞ마ᆞ갓디〮아니〮하ᆞ갈싸ᆡ〮
이〮런젼차ᆞ〮로〮어린〮百바ᆡ각〮姓셔ᇰ〮이〮니르고〮져〮호ᇙ〮배〮이셔〮도〮
마ᆞ차ᆞ감〮내〯제ᄠ그〮들〮시러〮펴디〮몯〯하ᆞᇙ노〮미〮하니〮라〮
내〮이〮라ᆞ갈〮為윙〮하ᆞ〮야〮어〯엿비〮너겨〮
새〮로〮스〮믈〮여듧〮字짜ᆞ강〮라ᆞ갈〮마ᆡᇰ가ᆞ〮노니〮
사라ᆞ감마〯다〮하ᆡ〯ᅇ겨〮수〯ᄫ기니겨날〮로ᄡ구메〮便뼌安ᅙ간킈〮하ᆞ고〮져〮하ᆞᇙᄯᆞ라ᆞ미〮니라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로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 출처: 위키백과 -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로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어떤가? 이 구절에서 우리는 가슴이 뭉클해져야만 한다(뭉클해지지 않는다면 한국 사람이 아니다). 조선 백성들에 대한 세종의 큰 사랑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쉬운 문자를 직접 발명한 뒤 백성들에게 선물한 왕이 과연 있었던가? 조선 시대의 왕들만 보더라도 세종만큼 백성을 사랑한 왕은 없었다.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임진왜란 당시의 왕이었던 선조는 전쟁이 나자 자기 한 몸 살겠다고 꽁무니가 빠지도록 북으로, 북으로 도망쳤다. 이후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인조 또한 그랬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한반도 왕들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세종만큼은 달랐다. 그는 왕이라는 지존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누구보다 백성들을 사랑했다. 자신의 건강을 버리면서까지 한글을 발명한 이유가 바로 그 증거다.
실제로 한글이 반포되던 시기에 세종대왕은 이미 각종 지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세종은 분명 한글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병이 크게 악화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종대왕님께 정말 감사해야만 한다. 만일 세종의 한글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선진 대한민국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분명 자신이 만든 한글로 자손들이 많은 독서를 하여 전 세계 1등 국가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낮은 독서율을 보면, 세종이 만든 한글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한글을 모욕하는 각종 비속어가 범람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안타까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영어 학원에서 공부할 때 알게 된 한 원어민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인들은 세계 최고의 문자인 한글을 가졌으면서도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 이건 정말 미스터리다.”
그렇다. 현재의 한국인들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문자인 자랑스러운 한글을 가졌으면서도,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 남녀노소,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온 나라 국민들이 온통 스마트폰 삼매경에만 빠져 있다. 길을 가다가 이런 광경을 보면 정말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늘에 계신 세종대왕님께 부끄럽지도 않은가? 이러한 스몸비들을 본다면, 분명 대왕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뭐야? 내가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한글을 선물해 줬더니, 독서는 안 하고 이상한 기계로 놀기만 하네?”
이제 독서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노벨상인 노벨과학상에 대해 잠시 설명하겠다. 가까운 나라 일본은 지금까지 무려 20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노벨과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단 한 명도 이 상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차이를 만든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당연히 독서율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통계만 봐도 두 나라의 독서율이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 알 수 있다. 이 역시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원어민이 미스터리로 여겼던 사실이다. 그 원어민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어는 한자가 섞여 있어 배우기 어렵지만, 한글은 정말 쉽잖아? 그런데도 한국인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이는 과거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이후 지금까지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독서를 장려해 온 결과다. 양자론으로 봤을 때, 독서하는 국민들이 늘어나면 내가 강조한 집단무의식의 동조 현상이 일어나 어느 순간부터 전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과거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급격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독서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은 오랜 기간 많은 국민들이 꾸준히 독서를 함으로써, 일본 전체 국민들의 집단무의식에 긍정적인 동조를 불러왔을 것이다. 이것은 매우 강력하고 하나로 결집된 끌어당김의 법칙이 되어, 결국 노벨과학상이라는 현실을 불러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인들은 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노벨과학상이 나오지 않는지 의아해한다. 하지만 일본과 달리,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국민들이 사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영광스러운 상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일본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한 나라의 국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은 과학기술이다. 지금까지 노벨과학상을 받은 과학자들의 숫자를 기준으로 나라별 순위를 매겨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로 노벨과학상의 수가 곧 그 나라의 국력이라는 점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한 국가의 과학기술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는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미스터리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일본에 못지않은 높은 경제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이것을 바꿔 생각해 보면 이렇다. 만약 대한민국 국민들의 독서율이 일본만큼만 높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일본보다 더 많은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다.
다행히 대한민국에는 세종대왕께서 선물해 주신 세계 최고의 문자인 한글이 있다. 만일 충분한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읽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사실 우리는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의 독서 강국이었다. 만약 국민 모두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우리나라의 독서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면, 분명 미국을 넘어 세계 1등 국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