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천경자의 그림 앞에서, 글로 돌아온 감정
문은 닫혀 있었다.
믿고 찾아간 미술관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돌려보냈다.
잠시 멈칫한 발걸음이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기대 없이 들어간 공간에서
나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곳에서 만난 <꽃무리 속의 여인>은
내가 알던 천경자의 강렬함과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꽃더미 속에 몸을 누인 여인의 표정은
어찌나 담백하고 정갈하던지.
화려한 색채 뒤로 고요하게 가라앉은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이 우연한 만남이야말로
인생이 숨겨둔 선물임을 직감했다.
천경자,
그녀는 내 오래전 소녀시절의 한 장면이다.
그 시절 서점과 신문, 여성잡지 속에서
그녀의 책들은 늘 눈에 띄었고
화려한 색채의 그림들은
막연한 동경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위작 논란과 함께
그녀가 붓을 내려놓았다는 소식을
여러 매체를 통해 접했다.
사십 년이 훌쩍 지난 뒤
뜻밖의 장소에서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삶의 한과 슬픔을
꽃과 색으로 건너온
한 명의 뜨거운 예술가를.
그녀는
화가이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전시장에 놓인 책들 사이에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를 발견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나이에 과연 이해했을까 싶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책이 한때 문학소녀·소년들에게
깊이 남았던 문장이었다는 것.
그렇게 내 인생의 한 조각으로 남아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그림 앞에 선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색이 먼저 왔다.
설명보다 빠르고 이해보다 먼저였다.
꽃이 있었고 여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형태가 아니라
오래 머문 감정의 표면 같았다.
그 얼굴들은
무언가를 말하지 않았고
이미 많은 시간을 지나온 뒤의 눈이었다.
나는 보고 있었지만
동시에 어딘가를 되짚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림 앞에서
감정이 먼저 들어오자
그녀의 문장이 보였다.
그녀는 그림으로 말하고
글로 남겼다.
그림은 이미 드러난 것이었고
글은 끝내 남겨 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보고 있으면서 읽고 있었고
읽고 있으면서 보고 있었다.
그 사이를 조용히 오가며
나는 다시 소녀시절의 감성으로 돌아갔다.
지금 내 갤러리를 들여다보면
그날의 그림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
사진이 금지였는지 내가 놓친 것인지
이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떤들 어떠하랴.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녀의 꽃과 여인은
여전히 선명하게 닿아 있다.
색 하나와 눈빛 하나.
어떤 것은 남기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이름을 붙이는 것.
아마 그것이
그녀가 말한 전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날
내 안의 어떤 페이지를 펼쳤다.
아직도 닫히지 않는 나만의 49페이지.
미술관을 나와
정동길을 걷다 만난 동죽칼국수 한 그릇.
바다를 머금고 있다가
입안에서 툭 터지는 그 식감은
조금 전 화폭에서 느꼈던
담백한 위로와 닮아 있었다.
디지털이 계산하지 못한 성근 시간 덕분에
나는 그날
한 편의 그림과 한 그릇의 온기로
마음의 허기를 채웠다.
나는 그날
보려고 했던 전시 대신
오래 남을 감정을 만났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방문 당시, 구글 지도에는 ‘영업 중’으로 표시되어 있었으나 실제 현장은 다음 전시를 위한 보존 및 전시 교체 공사로 인해 일시적으로 휴관 상태였다. 디지털 정보는 종종 현재의 시간을 완전히 따라오지 못한다.
그 미묘한 어긋남이 이날의 우연한 경로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