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벽을 넘는 순간

한국 · 박신양의 전시쇼에서의 질문

by Mansongyee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신양의 전시쇼: 제4의 벽 (THE 4TH WALL)〉


배우가 그린 대작들 앞에 서자

나는 질문 속으로 들어갔다.


제4의 벽은 무엇인가.
그는 왜 그렸는가.
어디까지 드러내고,
어디까지 남겨두었는가.


연극에서 제4의 벽은
배우와 관객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경계다.


배우는 그 너머를 보지 않는 척하고,
관객은 그 안을 들여다본다.
그 약속 위에서 연기는 완성된다.

그런데 이 전시는
그 약속을 조용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배우였던 사람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
자신의 안쪽을 그대로 캔버스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원색은 섞이지 않았다. 대신 겹쳐졌다.
물감은 칠해진 것이 아니라 쌓여 있었다.

두껍게 올라간 층들은 색이 아니라
감정의 부피처럼 보였다.


시간이 눌리고,
감정이 겹치고,
그 흔적이
거친 결로 남아 있었다.


마티에르.
그것은 단순한 질감이 아니라
감정이 머물렀던 자리였다.

그리고
나는 한 자화상 앞에 멈춰 섰다.



감정은 터지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 가라앉아 있었다.

젖은 듯한 초록 위에
얼굴이 떠 있었지만
완전히 붙잡히지는 않았다.


눈은 나를 보는 것 같았지만
더 깊이 자신의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얼굴.
설명되지 않은 표정.

그 위에 남아 있는 것은 지워지지 않은 흔적뿐이었다.


이 그림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자화상이 아니라
자신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멈춰 선 기록처럼 보였다.


나는 그 앞에서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안쪽에
조용히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그림.



남과 여.
이번에는 감정이 멈추지 않았다.
인물은 흐릿했지만 감정은 선명했다.


두 사람의 얼굴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그 사이의 무언가만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두껍게 쌓인 물감은 색이 아니라
눌러 담아둔 감정의 층이었다.


위로 치솟은 검은 덩어리는 억눌린 시간 같았고,
긁히고 번진 자국들은 끝내 닿지 못한 말들의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한쪽에는

가라앉지 못한 고뇌가,
다른 한쪽에는
끝까지 올라온 감정의 에너지가 있었다.


그 둘은
마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밀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 그림은
남과 여의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이 형태를 빌려 잠시 머물다 간 장면처럼 보였다.
보여주는 사람에서 드러나는 사람으로.


전시장 한쪽에는
얼굴이 걸려 있었지만
그 얼굴은 끝내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

빛은 일부만 비추고 나머지는 남겨둔 채였다.


그 앞에 서 있으면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감각이 먼저 온다.


배우라는 프레임 안에서는
늘 역할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대본도, 감독도 없다.
대신 가공되지 않은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보여주기 위해 그린 것이 아니라
드러나기 위해
그린 것처럼 보였다.


작업 노트에 반복되는 단어,
그리움.
그가 붙잡고 있던 것은
어쩌면 특정한 장면이 아니라
사라진 시간의 감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낯설지 않았다.
나는 그 앞에서
나의 고독을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벽은 가로막는 것이지만
동시에 지켜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면서도 보지 않는 척하고,
알면서도 모르는 얼굴로 거리를 유지한다.


그렇게
무너지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에도 제4의 벽이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벽을
아주 조금 넘게 되는 날이 있다.


말하지 않던 것을 말하게 되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는 순간.
그때 사람은 역할이 아니라 자신으로 서게 된다.


이 전시는
배우가 무대를 벗어난 이야기가 아니라,
무대와 현실 사이에 있던 벽을
스스로 허물어 낸 기록이다.


나는 그 앞에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
이 화가는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보여주던 사람은 사라지고,

드러나는 사람이 남았다.





마티에르(Matière)

회화에서 물감을 두껍게 쌓아 질감 자체로 감정과 시간을 드러내는 표현 방식. 색이 아니라, 쌓인 흔적이 의미가 된다.



비스듬히 보았을 때, 보이던 것들

이 그림들은 정면보다 약간 비켜서 볼 때 더 많은 것을 드러냈다.

겹겹이 쌓인 물감이 빛을 받으며 표면을 넘어서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붓질은 평평하지 않았다. 감정처럼 솟아 있었다. 그래서 이 그림들은 앞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마주할 때 비로소 입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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