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침은 늘 엄마의 독백으로 시작됐다.
그 말들은 나를 깨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엄마 자신을 하루에 맞추기 위한 말에 가까웠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삶에 대한 후회가
아침 공기처럼 방 안에 퍼져 있었다.
반복되는 독백 속에서
나는 질문하는 아이가 되지 못했다.
묻는 대신 듣는 쪽을 선택했고,
눈을 뜨자마자 해야 했던 일은
이를 닦는 것도, 교복을 고르는 것도 아니라
엄마의 하루를 먼저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나는 말없이 등교 준비를 하고
스쿨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서 늘 같은 생각을 했다.
나는 빨리 커야 한다고,
그래야 이 집을, 이 관계를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학교에서의 시간은 대체로 비슷했다.
나는 늘 성실했고, 공부를 놓치지 않았다.
재미는 없었지만,
그 사실이 문제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재미보다 책임에 먼저 익숙해져 있었다.
가끔 복도를 지나다 창가에 멈춰 서면
그 남자가 창밖에서 내 교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말을 나누지 않았고,
서로의 삶에 들어갈 생각도 없었다.
그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루가 조금 덜 무거워졌다.
그것이 그 시절 내가 허락받은
유일한 숨 고르기였다.
야간자습이 끝나면 밤은 깊어 있었고,
집은 늘 조용했다.
씻고, 공부를 마친 뒤
동생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피로는 빠르게 잠으로 이어졌고,
아침은 늘 같은 방식으로 다시 찾아왔다.
엄마의 독백이 잠시 멈춘 것은
내가 대학을 다니던 때였다.
핸드폰은 있었지만
전화를 길게 할 수는 없던 시절,
나는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서
하루에 한 번,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밥은 먹었니, 공부는 잘 되니
그런 질문을 기대했지만
대신 나는 늘 안부를 묻는 쪽이었다.
괜찮으냐고, 힘들지 않으냐고.
통화가 끝날 무렵이면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를 두고 떠나온 딸이 되었고,
그 확인으로 전화는 마무리되었다.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한 시간을 걸어 과외를 다녔다.
그 선택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엄마를 돕는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딸의 자리가 아니라
보호자의 자리에 서 있었다.
이미 엄마의 딸이 아니라
엄마의 엄마로 살고 있었다.
그 역할이 언제부터 내 것이 되었는지는,
오래도록 중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