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7 케르디오 (평상시 모습)

by 승현

해가 떨어지자, 난데없이 뭔가가 먹고 싶었다. 차가운 바람을 맨발에 슬리퍼로 밀어내며 편의점에 도착한 나는 푸딩 두 개와 포켓몬빵을 구입했다.

사실 난 포켓몬은 잘 모른다. 어린 시절에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닌텐도나 게임보이의 정보를 얻을 기회도, 살 형편도 없었다. 점차 나이를 먹어가며 포켓몬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고, 이십몇 년 동안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게임 시리즈라는 것 정도와 몇몇 귀여운 캐릭터의 이름이 내가 아는 전부이다.

내가 고른 빵은 언제나 주인공에게 얻어터지는 역할로 나오는 로켓단의 초코롤이었다. 가격은 천 오백 원. 딱히 그 캐릭터들을 동정해서 초코롤을 산건 아닌, 그저 적당한 천 오백 원짜리 빵이 이것밖에 없었을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무심하게 포장을 뜯으니 동봉된 스티커가 나왔다. 빵도 먹고 스티커도 얻고, 좋은 세상이다. 안타깝게도 난 스티커는 관심이 없다. 빵을 먹는 동안 책상 적당한 곳에 스티커를 던져놓았다.

너무 달디 단 초코롤을 씹으며 스티커를 보자니 "0647번 케르디오 (평상시 모습)"이라는, 꽤나 자세한 이름과 함께 말과 소를 섞어놓은 듯한 캐릭터가 있었다. 그럼 다른 모습도 있다는 건가? 얘는 대체 뭐지? 같은 탐구를 하는데 불현듯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런 걸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생각. 빵에서 나온 스티커 따위에 거금을 들여 구입하려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현실이 날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즉시 스마트폰을 들어 포켓몬 스티커의 시세를 조사했다. 희귀한 캐릭터의 경우 몇만 원이나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말도 안 되는 군.라고 생각하며 내가 가진 스티커를 검색했다. 0647 케르디오 (평상시 모습)의 평균 시세는 사천 원이었다. 세상에, 말도 안 되는 군. 천오백 원짜리 빵을 먹고 이천오백 원을 이득 볼 수 있는 구조다. 자본주의 만만세다.

난 남은 빵과 케모마일 차를 한입에 털어 넣고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다) 동네 주민들과 중고거래를 할 수 있는 앱에 스티커를 삼천 원에 등록했다. 시세보다 저렴하다니, 누군가 낚이기만 기다리면 된다.

어린 시절 가지지 못한 게임보이의 열망을 담아 구입한 닌텐도 스위치가 내 책상에 있었다. 세상을 강타한 포켓몬스터를 몇 년 전 처음 해보았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더럽게 재미없네"였다. 신기한 일이다. 전 세계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게임을 나는 한 시간도 채 참지 못했고, 게임을 산 돈을 낭비한 꼴이 되었다. 그리고 무계획으로 침입한 편의점에서 고른, 아무 빵에 들어있던 종이 쪼가리는 누군가에게 보물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가치관을 결정하는 가치관은 뭘까? 인지도? 오래됨? 금액? 모르겠다.
누군가 내 케르디오를 발견하고 나에게 삼천 원을 준다면, 나는 그 돈으로 붕어빵이나 사 먹은 다음 이 일을 영영 잊어버리겠지. 나에겐 그 정도의 가치인 일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빵을 살 때 같이 산 거금 삼천 원짜리 푸딩을 접시에 덜어 먹었다. 올해 먹은 간식 중 가장 맛이 없었다.
삼십 분도 안 되는 시간에 수많은 가치가 생겨나고 무너졌다.
푸딩을 뜯으며 튄 얼룩을 닦아내며 이제 난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월, 금 연재
이전 11화요즘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