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더글러스 애덤스의 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나온 숫자다. 인류는 우주에서 둘째가는 컴퓨터 '깊은 생각'에게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물어본다.
이 컴퓨터는 무려 칠백오십만 년이라는 세월을 계산했고 인류의 후손들이 시간을 초월해 고대하던 해답을 듣기 위해 모인다. 그리고 깊은 생각이 내세운 답은 "42"다.
인류는 되묻는다. "대체 42가 뭐지?"
깊은 생각이 말한다. "42는 42야."
인류는 결국 42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장면이 끝난다.
어릴 적에 이 영화를 봤다. 원작이 소설이라는 건 최근에 알았다.
찾아보니 무려 천이백 쪽이나 되는, 마치 제목처럼 은하수에 대한 설명서라도 들어있지 않을까 싶은 분량의 소설이었다.
당시 영화를 볼 때는 그저 웃긴 영국식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본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우연히도 저 장면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고민하게 되었는데 내 결론도 깊은 생각과 다를 것이 없었다.
"42는 42다."
인류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 고성능 컴퓨터 '깊은 생각'을 만들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컴퓨터를 만드는 동안에도 그 "해답"이 무엇일지 계속해서 갈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체 어떤 대단한 답을 내주려 컴퓨터의 계산이 칠백오십만 년이나 이어지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내일은 계산이 끝나 과연 해답이 나올지 매일같이 설레었을 것이고, 어떤 답이 내어줄지 예측하는 자도 있을 것이며 이것으로 열띤 토론이 열렸을 것이다. 이것을 양분 삼아 인류는 칠백오십만 년이라는 깊은 시간을 살아갈 수 있었다.
결국 나온 "42"라는 숫자가 무엇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42라는 답을 듣기 위해 컴퓨터를 만들었으며, 식사를 준비하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출근했다. 서로 사랑했으며 서로 싸우고 토론하며 살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 이게 바로 "42"이다.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다.
"42"는 누구나 다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다.
각자가 가진 42를 자각하고 사느냐, 못하느냐.
자각했다면 42를 이용할 것인가, 그냥 둘 것인가?
42를 사용하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인류는 끝없이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가장 재밌는 부분이다.
칠백오십만 년을 살아온 인류 모두가 컴퓨터 '깊은 생각'의 해답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공감을 하지는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깊은 생각'이라는 컴퓨터가 무엇인지, 무슨 질문을 했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터. 하지만 그들 역시 칠백오십만 년을 살았아왔고, 오랜 시간이 지나 컴퓨터 '깊은 생각'이 녹슬어 부서져 먼지가 되는 날. 언젠가 어떤 질문을 했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42"는 인류와 항상 함께 존재할 것이며, 그것을 알든 모르든 인류는 상관없이 살아지게 되는 것.
이것이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다.
'깊은 생각'은 우주에서 둘째가는 컴퓨터이다.
우주에서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알기 위해 첫 번째로 만든 컴퓨터는 바로 "지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