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를 보니 수천 명의 인파가 제야의 종이 울리는 것을 보기 위해 모여있었다. 다들 춥지도 않을까. 솜옷으로 팔다리 얼굴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곧이후 삼, 이, 일, 하고선 새해가 밝았다.
일월 일일이 되었다. 사람들은 다들 추위도 잊고 환호했고, 나는 이불 속에 앉은 채 제야의 종을 서른세 번 치는 걸 보는 건 꽤나 지겨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섯 번째 타종에서 나는 숫자를 세는 걸 포기했고, 동시에 무언가가 허탈해졌다.
새해 첫날은 이상한 날이다. 해가 뜨고 일어나 당연하게도 떡국을 먹었다. 매해 첫날은 떡국을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에, 호들갑을 떨며 마트에서 사 온 떡국을 준비하며, 여기 대체 뭘 넣어야 하지 생각했다. 간장 조금, 소금 조금. 계란 약간 풀고. 이게 다였다. 한 해를 맞아 가장 처음 하는 중요한 일일 터인데 의외로 간단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떡국은 떡국 맛이 났다. 대체 뭘 기대한 건지.
배가 불러 소파에 앉아 있자니, 희한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일월 일일은 '없는 날'이 아닐까.
뭔가 단 게먹고 싶어 나가서 사 올까, 배달을 시킬까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들 휴무겠지 같은 생각을 하며 포기했다. 원래 오늘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휴일이니 내일 가기로 했다. 그렇구나, 오늘은 다들 쉬는 날이구나. 몇몇의 특수한 직업을 제외하면 오늘은 세상이 멈춘 날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다들 집에서 떡국이나 먹고 있겠지. 세상을 멈춘 채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하지 않은 약속대로 같은 행동을 한다. 인간 사회의 약속 때문에 한 나라가 멈췄다. 그러니까 오늘은, '없는 날'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것 참 신기한 날이군.
배불리 먹었으니 조금 더 머리를 써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전 세계의 새해 첫날은 같은 첫날이 아닌 것이다.
날짜 변경선인지 하는 것 때문에, 어떤 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일찍이 새해를 맞는다. 어떤 나라는 다른 나라가 새해 축하를 다 하고 집에 돌아가고 나서야 새해가 돌아온다. 지구는 둥그니까, 새해도 한 바퀴 돌아서 오는구나.
조금 더 조사해 보니, 범지구적으로 보면 첫 새해부터 마지막 새해까지 약 스물여섯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이 약 서른여덟 번의 새해를 경험한다고 한다. 지구는 정말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는구만. 내가 남은 떡국을 저녁에 다시 데워 먹을 때, 지구 반대편의 제임스 씨는 이제야 새해를 맞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니 진짜 이상하네.
오늘은 '없는 날'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떡국을 끓이고, 커피도 마시고 드라마도 보고, 게임도 하고, 코코아도 마시고, 끝내는 떡국을 만들었던 냄비를 씻으며 제법 '있는 날'로 지내었다.
어쩌면 세상과 나 사이에도 날짜변경선 같은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맞물리지 않지만 공존하는 사이. 첫 번째 새해와 마지막 새해 같은 시간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