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탁구협회에서 답장이 왔다

by 오탁구

탄자니아 파견 근무 시절, 좀이 쑤셔서 운동이라도 하고 싶었다. 낮에는 현장에서 일하고 퇴근해서는 줄곧 숙소에 있었다. 딱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었다. 갑갑한 마음에 인터넷으로 탄자니아 탁구협회 연락처를 알아봤다.


탁구장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는 이메일에 당시 탄자니아 국가대표 Issa 감독이 답을 주셨다. 시내 초등학교 강당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탁구 연습을 하니 시간 되거든 오시라. 아싸!



학교는 시내 한가운데 있었다. 협회에서는 학교 강당에 탁구대 서너 대를 펼쳐 놓고 십여 명이 모여서 탁구를 쳤다. 강당 바닥은 시멘트였고 군데군데 깨져 있었다.


수년 전에 인도와 중국에서 기증받았다는 낡은 탁구대가 보였다. 날은 푹푹 찌는데 바람을 막는다고 창문은 모두 닫고 탁구를 쳤다. 가끔씩 선수들이 청소한다고 바닥을 빗질할 때는 강당 안에 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환경이야 어떻든지 탄자니아에서 탁구를 칠 수 있어서 좋았다.


첫날부터 선수들과 돌아가며 탁구를 쳤다. 첫인사말이 Karibu! (환영합니다)였다. 감독님과 선수들, 협회 임원들이 있었는데 낯설지가 않았다. 탁구를 치고 만날 탁구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탁구는 한 수 배우는 자세로 쳤다. 승부욕보다 탁구 치는 즐거움이 컸다. 그들은 국가대표라도 전업 선수는 아니었다. 자기 본업이 따로 있었다. 시간을 쪼개서 꾸준히 운동하는 그들이 크게 보였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모임이 있는 날에는 학교에 가서 탁구를 쳤다. 선수들과 금방 친해졌다. 처음에는 나를 Rafiki(친구)라고 부르던 선수들이 어느 날부터 Mr. LEE로 불렀다. 연초에 열리는 탄자니아 오픈 대회를 앞두고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부탁해 탁구공을 협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어느 날 감독님이 불렀다. '탄자니아 오픈'에 출전해 보지 않겠냐고. 동네 탁구 수준에 무슨 국제대회인가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다. 정말로 출전을 제안했다. 얼떨결에 탄자니아 선수들과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탄자니아 오픈'은 이웃 동아프리카 여러 나라 선수들도 참가하는 국제대회였다. 아프리카에도 나라마다 탁구협회가 있고 선수들이 있었다.




"어! 탁구 잘 치는 중국 선수가 왔나 보다."

대회장에서는 나 혼자 동양인이었다. 외모 하나로 흑인 선수들을 긴장하게 했다. 물론 경계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기려는 욕심은 진작 내려놓았다. 실력차가 불을 보듯 뻔해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합을 했다. 단식과 복식까지 총 4경기에 참가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전적은 1승 3패로 예선 탈락. 그래도 좋았다.



협회 선수들과 교류는 자연스럽게 교민 사회로 이어졌다. 당시 나는 한인교회에서 탁구 전도사로 살았다.


교인들이 보기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친구가 일요일 오후마다 탁구대를 펼쳐 놓으니 황당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점심 이후에 담소를 나누던 교인들이 하나 둘 탁구시합을 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탄자니아 국가대표 선수들을 교회에 초대해서 교인들과 교류전을 주선했다. 탄자니아 선수들이 교회로 온다니까 현지에 오래 산 교민들도 탄자니아 탁구협회가 있었냐고 놀랐다. 시간 약속을 지키기 어려운 현지 여건을 알기에, 선수들이 정말 나타날까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선수단은 약속시간에 협회 승합차를 타고 나타났다. 선수들은 탁구를 즐기던 교회 식구들 앞에서 라켓을 휘둘렀다. 앞으로 교회 식구들이 선수들에게 레슨을 받으면 서로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선수들이 부수입이라도 올렸으면 했다.


아쉽게 협회 사정으로 다음 레슨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적었다.



지난해 출장에서 한 탄자니아 선수를 다시 만났다. 5년 만이었다. 그는 여전히 낡은 라켓으로 한국에서 온 친구에게 한 수 가르쳐주겠다고 땀을 흘렸다. 본업을 하면서 유소년 코치 생활까지 열심히 하고 있었다.


환경은 그대로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탁구에 진심인 현 탄자니아 챔피언 Neema(네마)였다.




*다음화는 '건강을 위해 달리지 않았다. 달리려고 건강을 지켰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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