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중독 치료제

일중독자끼리 만나서

by 오탁구

복지관에 다닐 때 '일중독' 아니냐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문서 작업하는 나를 보고 신입 직원이 한 말이었다. 아차 싶었다.


야근을 밥 먹듯 하고 퀭한 눈빛으로 일하는 선배들을 보고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했는데, 그들과 같은 모습이라니.


중독 치료 시작이 중독된 걸 인정하는 순간부터라고 했었나? 술 마시고 아직 안 취했다고 하는 사람은 대개 취했더라는 말이 떠올라 일단 인정하기로 했다.


사실 나름대로 일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산다. 퇴근 후에는 탁구도 치고 달리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보낸다. 사무실에서는 일을 찾아서 하는 편이다. 어차피 할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미리 해둔다.


지금도 사무실 밖에서 문득문득 일 생각이 나지만, 적어도 일에 끌려다니지는 않으려 한다. 탁구와 달리기를 하기 전까지 일은 스트레스였다.


생각에 확신이 없으니 일에 휘둘렸고, 사무실 밖에서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에 묶여 살았다. 줏대가 없었다. 내 경우는 운동이 물렁물렁한 소신을 조금 더 단단하게 했다.


또 다른 방식으로 일중독에서 벗어난 동료들이 있다. 국제개발에서 강조하는 '주인의식'이 강한 친구들이다. 우리 팀에도 있고 해외 센터에도 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좋아서 하는 건데요. 일이 잘 되면 좋잖아요”


소처럼 일하지만 나는 이들이 지치는 걸 못 봤다. 특히 어려운 일을 맡았을 때 더 열심히 하는 특징이 있다. 어려울수록 성취감이 크다면서.


한 친구는 해외 출장을 가서도 일과 후에 공모사업 제안서에 매달렸다. 덩달아 나까지 숙소에서 들들 볶였다. 당시 배탈을 앓고 있었는데 제안서를 검토해 달라는 통에 혼났다.


서류 대신 의사에게 내 몸 상태부터 검토받고 싶었는데 말이다. 공모사업에는 떨어졌지만 우리는 제안서를 다듬어서 다음에 다시 내기로 했다.


오늘도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현지 직원에게 이메일이 한 통 왔다. 현지에서 내년부터 주민들에게 프로그램비로 자부담을 받기로 했지만 어떻게 받을지 아직 실행계획은 없었다. 방법을 고민 중이었다.


이메일에 딸려온 보고서에는 본인이 지난주에 초등학교에서 공청회를 열었고, 주민들이 올해부터 다달이 소액씩 나눠서 내기로 했다고 적혀 있었다.


기금을 관리할 주민도 몇 사람 뽑았다고 했다. 현지 사정을 잘 알기에, 이 직원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됐다.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결국 이메일로 칭찬을 장황하게 적어 보냈다. 앞으로 자부담 전환은 이 걸로 되겠다.


일중독에는 저마다 치료제가 다르다. 누군가는 운동을 하고, 누군가는 자기 사업하듯 일을 한다.


결국 일중독을 결정하는 건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보다 일에 얼마나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 다음화는 '탄자니아 탁구협회에서 답장이 왔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전 09화탁구장 어르신들이 알려준 ‘지금 해야 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