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맨날 뛰어요. 이번 주 토요일 아침에 같이 뜁시다"
수년 전 탄자니아에서 만난 한 형님이 한 말이었다. 늘 활력이 넘치던 그와 토요일 아침마다 몇 번을 같이 뛰었다. 5km 남짓한 거리를 숨이 턱까지 차서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뛰게 될 줄은 몰랐다.
달리기를 생각하면 초등학교 때 운동회가 떠 오른다. 공책 한 권만 받아봤으면. 달리기 시합에서 친구들은 금방 눈앞에서 달아났다. 일등부터 삼등까지 손에 도장을 찍고 공책을 주는데, 만날 꼴찌인 나랑은 상관이 없었다. 결국 졸업할 때까지 한 권도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는 체육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크로스컨추리를 시켰다. 학교 뒷산을 뛰는 거였다. 발도 느리고 체력도 저질이었던 내게는 지옥훈련이었다. 이렇듯 달리기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 오죽하면 제일 싫어하는 운동이 달리기였을까.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밤 9시만 넘으면 바지 주머니에 체크카드 한 장만 넣고 문밖으로 나선다. 대신 천천히 뛴다. 천천히 뛰는 거라면 얼마든지 뛸 수 있다. 집 앞에 커다란 팽나무 아래서 몸을 대충 풀고 십여분을 달리면 기분 좋게 숨도 차고 몸도 따듯해진다. 이때쯤 경인교대 후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길은 동네 뒷산을 두르는 왕복 2차선으로 이어진다.
달밤에 조깅하기에는 이 코스가 딱이다. 한적하고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반복돼서 지루하지 않다. 올해부터 부상을 줄이려고 거리도 줄였다. 5km 남짓한 건강 달리기면 충분하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 달렸지만, 이제는 뛰기 위해서 건강하고 싶다. 달리기는 버거웠던 직장 생활에 변화를 일으켰다. 전에 없던 활력이 생겼다.
직장에서 팀장이 되고 많이 헤맸다. 여러 회의에 불려 다녔고 말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이 많았다. 상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은 날일수록 머리가 무거웠다. 책상 앞에 앉으면 한숨부터 나왔고, 일 생각은 퇴근 후에도 계속되었다.
달리고 나서 머리가 개운해지는 맛을 보고, 골치 아픈 일이 있을수록 달린다. 달리다 보면 뛰기 바빠서 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머리가 온전히 쉬는 시간이다.
입사 초기,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활동한 가톨릭 신부 이야기를 읽고 감동받은 일이 있다. 그는 의사이자 성직자로, 한 지역을 변화시켰다.
그와 달리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비슷한 국제개발 업무를 한다. 그런데 왜 피곤에 절어살까. 일하면서 깨달았다. 뜻깊은 일도 제대로 하려면 체력이 필요하구나. 일단 머리 쓰기 전에 체력부터 기르기로 했다.
달린다고 문제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다. 다만 문제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달라진다. 좋은 생각도 떠 오른다.
오늘도 힘든 하루였다.
당장 문제 해결이 안 되면 어떤가?
뛰어야겠다.
* 다음화는 '야매 코치와 프로 코치'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