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장 어르신들이 알려준 ‘지금 해야 할 일’

by 오탁구

머리 쓰기 싫어서 시작한 몸 쓰기였다. 육아휴직 기간, 동네 작은 탁구장을 아지트 삼아 드나들었다. 관장님은 탁구가 좋아서 은퇴와 동시에 상가 건물에 있던 예배당을 탁구장으로 만든 목사님이었다.


목사님은 탁구장에 갈 때마다 반겨주셨고, 음식 솜씨가 좋으신 사모님께서는 탁구장 회원들을 불러서 점심을 만들어 주셨다. 그때는 몰랐다. 탁구장에서 어르신들께 인생을 한 수 배우게 될 줄은.


당시 탁구장에 놀러 가면 오전에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운동을 하셨다. 한 번은 어르신들을 형님팀, 아우팀으로 나누어 시합 영상을 찍었다.



“형님들, KBS 촬영하는데 지면 무슨 망신이에요? 한 번이라도 이겨보세요.”

“까분다 까불어. 아주 까불고들 있어”


시합보다 주고받는 말씀이 더 재미있었다.


경기는 팽팽했다. 2:1로 아우팀이 이겼고, 형님팀 패배 후 한 어르신은 머리를 싸매 쥐고 안타까워하셨다.

시청자 댓글도 여러 개 있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즐거운 탁구 하세요.”

“긴장감 넘치는 경기였습니다.”


몇 분은 한국전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당시 전투기를 호종기라고 불렀단다.

“호종기 온다. 숨자!”


시합을 마치고 형님팀 어르신 한 분이 자녀들이 요새 효도하는 이야기를 한참 하시다, 후회되는 일을 하나 알려주셨다. 지금은 자녀들이 다 성장해서 뒷바라지할 일이 없는데, 옛날 생각하면 자녀들에게 미안하다고. 먹고사는 게 바빠서 요새 사람들처럼 애들 한번 제대로 안아준 적이 없다고 하셨다.


아하! 이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그 뒤로 틈만 나면 아이들을 안아준다. 어르신께 지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배웠다.


복직하고 1년 동안 목사님을 찾아뵙지 못한 사이, 어느 시청자가 댓글로 관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작은 일에도 칭찬을 후하게 해 주셔서 늘 감사한 분이었다.


그분 빈자리를 돌아가시고 나서야 깨달았다. 생전에 더 잘할걸. 아직도 탁구장에 가면 목사님께서 반겨주실 것만 같다.



글에는 담지 못한 어르신들 시합 영상입니다.

https://youtu.be/C8_WVTd3FUY?si=A54UV_FqNc1xHayS


* 다음화는 '나의 일중독 치료제'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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