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
이 개천은 작은 도시의 중심을 가로질러 큰 강과 바다가 맞닿은 하구로 흘러간다.
그러나 오랫동안 오염 된 채로 방치당해, 주위를 지나면 고여서 썩은 물 냄새가 진동하던 곳이었다.
주위에 서식하던 것은 온갖 날벌레와 오염수에 사는 해충, 쥐 같은 가까이하기 어려운 것들 뿐이었던 곳.
그러다 버려진 이 개천 주위가 개발지역이 되면서 주변 정리가 시작되었고, 그럴싸한 천변 자전거 길과 산책로가 조성되면서 수질 개선과 개천 정비가 함께 이루어졌다.
마침내 이 개천과 천변 산책로를 둘러싼 소박한 갈대숲이 도심 한복판 생태구역이 되면서, 몇 년 후 환경이 안정화된 후엔 때가 되면 철새들이 찾아오고 목마른 작은 짐승들도 찾아오게 된 것이다.
몇 년 전, 밤 산책 중 마주쳤던 너구리 새끼들도 그런 경우였을지도 모르겠다.
낮은 풀 숲에 몸을 웅크리고 까만 눈을 반짝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로등 사이 가장 어두컴컴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사방이 어두운 곳이었지만 카메라의 줌을 당겨 찍으면 보일까 싶어 서둘러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려하는데, 가까워지는 누군가의 기척에 화들짝 놀라 재빠르게 풀 숲 안 쪽으로 달아나 버렸다.
나는 난생처음 본 실제 너구리 모습이 몹시 신기했다.
크기는 생각보다 컸고, 달아나는 속도도 생각보다 빨랐기 때문이었다.
마주한 것은 아주 잠시였으나, 그때의 기억은 이곳을 걸을 때마다 떠오르곤 한다.
무언가 서식하기에는 더럽고 안전하지 못했으며, 먹을 것도 없던 곳.
그러나 지금은 너구리와 철새와 커다란 물고기가 살아가고 있는, 나와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는 이곳.
그날 마주친 너구리는 어쩌면 누군가의 관심과, 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꾸준한 걸음이 쌓여 만든 회복의 증거가 아니었을까?
물비린내가 스민 비릿한 바람의 결을 따라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오염된 개천, 상처받은 마음, 정화와 회복, 그리고 새로운 만남.
다양한 이야기가 순환하는 이 개천은 어쩌면 우리 삶과 닮아 있구나,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