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보도
천변 산책로와 주변이 정비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차가 달리는 다리 밑으로 짧은 지하 보도가 생긴 것이다.
이 지하 보도는 천변 정비가 완료 되고 나서도 한참 후에나 개방이 되었는데, 아마도 안전상의 점검절차를 진행하는게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아무튼 산책로에서 지하 보도를 지나 다리 건너편으로 빠져나오면 조금 적막한 또 다른 산책로가 나온다.
기존에 그 곳으로 넘어가려면 횡단보도를 찾아 한참을 돌아가야 했는데, 이젠 훨씬 가깝고 빠르게 넘어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산책로는 비교적 사람이 적고, 두 개의 다리가 있으며, 그 중 하나의 다리 위엔 조악한 유럽풍 정자가 설치되어 있다.
밤에 가면 조명이 켜져 나름대로 운치가 있지만, 물가에 조명이 더해지면 날벌레가 잔뜩 꼬여 한여름에는 기피하게 되는 곳이다.
그럼에도 그 곳을 찾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건너편에 비해 높은 건물과 거리가 있어 바람길이 잘 통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사람이 적어 사색하며 걷기 좋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특히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무렵, 소연해진 바람을 맞으며 잔잔하고 리드미컬한 음악과 함께 걸으면, 쓸쓸한 계절의 여운도 낭만으로 덧입혀 만끽 할 수 있다.
그렇게 짧은 지하 보도 건너편에는 조금은 여유롭고 한적한 나만의 다른 세상이 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혹은 어떤 작품에서 장면의 전환을 위해 사용하는 흔한 클리셰처럼 말이다.
그것들은 전혀 다른 세상과의 연결점이기도 하고, 미래나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이기도 하며, 생과 사의 경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작품 속에서처럼 어떤 초현실적인 일이 일어나진 않는다.
이 지하 보도도 그렇다.
모두가 막혀있고 오직 앞과 뒤만 열려있는 이 외길을 지나고 나면, 내가 걸어 들어 온 곳과 조금은 다른 풍경, 조금은 다른 길의 모양처럼, 특별하고 대단한 변화가 아닌 아주 조금 달라진 것들이 눈에 보인다.
나는 요즘도 그 지하보도를 한 번씩 걸어보곤 한다.
걷다 보면 회색 벽과 순환되지 않은 약간 탁한 공기에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개천의 물은 흐르고, 나도 역행이든 순행이든 걸어가야만 한다.
그래야 이 습하고 답답한 공간을 벗어 날 수 있다.
그러다 끝에 다다르면 펑 하고 시원한 공기가 나를 반기고,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크게 한번 숨을 내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딛어본다.
누군가 미처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이곳에 풀 한포기는 어제보다 조금 자랐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진 이 세상에 다시금 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 이곳에 도달한 나는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 달라진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