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길(2)

전깃줄

by 별의 여백

어렸을 적 커다랗고 높은 송전탑을 보며 에펠탑이라며 소리 지르던 기억이 있다.


엄마! 우리나라에도 에펠탑이 있어! 그리고 엄청 많아!


눈을 빛내며 말하는 아이의 말에 웃음을 참으며 대답하던 엄마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강변 자전거 길에서 시선을 돌려보면, 에펠탑 같은 송전탑이 곳곳에 보인다.


특히 해 질 무렵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송전탑은 나름대로 감성적인 느낌을 자아내곤 한다.


그 송전탑으로부터 이어진 전깃줄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동남쪽 하늘의 하얀 달이 눈에 들어온다.


까만 전깃줄에 걸터앉은 하얀 달은 마치 오선지 위에 그려진 음표처럼 처연하고 아름답다.


달이 걸친, 검고 기다랗게 이어진 줄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전신주를 거쳐 끝도 없이 뻗어나가는 선의 흐름을 보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뻗어나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교차하는,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지점을 마주하게 되면 어쩐지 길을 잃어버린 듯 막막한 기분이 되어버린다.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며 복잡했던 마음으로부터 회피하던 나의 비겁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내 앞에 당도해 있던 문제들.


가령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갈등, 이해, 애정의 총량, 기대감, 그리고 거기서 오는 회의감 같은, 사소하지만 나를 괴롭히던 고민들이 눈앞에 놓인 것만 같았다.


정답이 없는 서술형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막막함에 눈을 돌려 바람이 불어오는 넓은 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일렁이는 수면처럼 가슴속이 울렁거려 나는 입과 턱에 힘을 주고 고개를 젖혀 올렸다.


다시금 눈에 들어온 검은 전깃줄은 커다란 점처럼 모여든 교차점 안에서도 자기 방향을 찾아 멀리 뻗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난 여전히 늘어진 전깃줄의 교차점에 서있는 것 같았다.


내 앞의 펼쳐진,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기다란 산책로는 분명 외길인데, 난 어쩐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전 05화자전거 길(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