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무
기다란 자전거 길 옆엔 다양한 풍경이 있다.
널따란 강의 하류, 사시사철 색이 변하는 논과 밭, 그리고 소담한 언덕과 산.
그리고 그 강과 논과 산에는 많은 생명이 발자국을 남긴다.
특히 자전거 길 옆으로 난 흙길을 유심히 보면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와 고라니의 발자국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아주 가끔 늦은 오후 갈대숲을 끼고 걷다가 보면 툭 튀어나오는 고라니와 깜짝 만남을 하기도 한다.
그 길에는 사람과 길짐승뿐 아니라, 많은 종류의 날짐승도 방문한다.
자전거 길과 논 사이에 나있는 수로엔 왜가리가, 강변 옆 갈대 사이엔 참새떼가, 논 위 전깃줄 위엔 비둘기 무리가 자주 찾아온다.
가끔 솔개인지 매인지 모를 맹금류 한 마리를 마주치기도 하는데, 그 녀석은 희한하게 둑 위 자전거길에 설치된 난간 위에 걸터앉아 먼 강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한다. 마치 고독을 즐기듯 말이다.
그렇게 많은 새들을 보게 되는 이 자전거 길에서 단연 압도적으로 감탄스러운 게 있는데, 그건 바로 새들의 군무다.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늦가을이 되면, 먼 북쪽에서부터 내려온 나그네들이 이 강에 터를 접기 시작한다.
한겨울이 되고 무리의 규모가 커지면 강 위에 하나둘 모여드는데, 모이는 개체수가 많아 멀리서 보면 강 위에 섬이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끼리끼리 뭉쳐 정체가 되는 구역이 생겨나면 한 무더기의 새 떼가 날아오르는데, 언뜻 보면 무질서한 날갯짓 같지만 나름대로 균형 잡힌 유려한 움직임이다.
날아오른 새들이 허공에 큰 형상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마치 검은 섬이 분해되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 같이 장관으로 느껴진다.
특히 낙조를 배경으로 한 시간 대에 만들어지는 이 아름다운 군무는 사진 동호회의 훌륭한 소재가 되어준다.
대포 같은 렌즈를 장착한 수많은 셔터음 사이에 나도 가만히 서서 검은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새들의 군무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숨을 내쉴 때 퍼져 나온 하얀 입김 너머로 아름다운 풍경이 희미하게 아른거렸다.
두런거리는 사람들의 대화소리와 짤막한 감탄사가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그 한마디의 소리들이 저 강 위에 모인 새만큼이나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가득해진 사람들이 텅 비었던 둑길 위에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삼각대를 괸 커다란 카메라를 여기저기 세워두고 어지럽게 서성거렸다.
나는 그 답답한 인파 속을 겨우 헤쳐 나와 숨을 골랐다.
몇 걸음 차이로 한산한 내리막 길을 터덜터덜 걸으며 무심코 옆 쪽 흙 비탈길을 보았는데, 모양이 다른 신발 밑창 자국들이 흙을 다지듯 잔뜩 찍혀 있었다.
몇십 분 전만 해도 건조하고 퍼석하게 일어난 땅이었는데.
그때, 멀리서 경찰차 소리가 들렸다. 길가에 무질서하게 주차해 둔 차량들을 향한 경고음이었다.
그 소리에 더욱 소란스러워진 장소를 뒤로한 채, 난 걸음을 옮겨보았다.
소음이 조금이나마 잦아든 곳에 다다르자 어슴푸레한 하늘 아래 낮고 어두운 산등성이가 보였다.
산의 너머에서부터 넘어온 찌르레기 떼가 무질서한 군무를 펼치며 어디론가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왜인지 모르게 머릿속이 검은 점으로 마구 찍어낸 찌르레기 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잔잔하고 평화로운 것들을 보며 비워내고 싶던 마음이, 그런 복잡하고 어지러운 것들로 채워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