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9
지난 8편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혼자서 끝을 맺을 수 있는가(독립성), 변수를 돌파하는가(문제해결력), 성과를 확장하는가(영향력)
이 직관적인 질문들은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초 체력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생존력'을 조금 더 냉정한 시장의 언어로 바꿔 불러보려 합니다. 바로 '고용가능성(Employability)'입니다.
다소 차갑고 어렵게 들릴 수 있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나를 고용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이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막연했던 생존 본능은 구체적인 '커리어 전략'으로 진화합니다.
이제 당신의 고용가능성을 완성할 3가지 퍼즐 조각, 행동 역량(Behavior), 시장 스킬(Skill), 성장 환경(Environment)을 맞춰볼 차례입니다.
[제1엔진] 행동 역량(Behavior): 변하지 않는 '기초 체력'
첫 번째 축은 행동 역량입니다. 지난 화에서 던진 3가지 질문이 겉으로 드러나는 '움직임'이라면, 행동 역량은 그 움직임을 가능하게 만드는 속근육입니다. 직무가 바뀌고 회사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회사의 배경이 없어져도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내 몸에 새겨진 생존 DNA'와도 같습니다. CareerFit 모델은 이 기초 체력을 5가지 핵심 근육으로 구체화합니다.
① 학습 민첩성 : "새로운 것을 얼마나 빨리 내 것으로 만드는가?"
과거의 지식은 금방 낡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마주했을 때 빠르게 습득하고 실무에 적용해내는 속도입니다. 이것이 변화를 기회로 바꾸는 힘입니다.
② 회복 탄력성 : "실패를 딛고 다시 튀어 오르는가?"
야생에서는 누구나 넘어집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주저앉고, 어떤 사람은 그 반동을 이용해 더 높이 튀어 오릅니다. 역경을 성장의 연료로 태우는 마음의 근력입니다.
③ 주도성과 실행력 : "기다리는가, 저지르는가?"
누군가 길을 터주길 기다리는 사람은 생존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기회를 포착하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일단 시도하여 마침표를 찍는 힘. 이것이 '시키는 일'을 넘어 '내 일'을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④ 적응적 문제해결력 : "답이 없는 곳에서 길을 찾는가?"
정해진 매뉴얼대로 풀 수 있는 문제는 더 이상 당신의 몫이 아닙니다. 복잡하고 낯선 상황에서도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실행 가능한 해법을 스스로 도출해내는 능력. 이것이 바로 불확실성을 돌파하는 '해결사의 조건'입니다.
⑤ 경력 주도성 : "내 삶의 운전대를 누가 잡고 있는가?"
회사가 내 미래를 책임져주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내 커리어, 좀 더 확장해서 말하자면 내 삶의 경로를 조직에게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설계하고 수정하며 운전해 나가는 태도가 필수적입니다. 당신은 회사라는 버스에 실려가는 승객인가요? 스스로 경로를 정하는 드라이버인가요?
이 5가지는 시대가 변해도 낡지 않는 당신의 '장기 근력'입니다. 8편에서 던진 질문들ㅡ독립성, 문제해결력, 영향력—이 바로 이 근육들이 작동한 결과입니다. 이 근육이 단단해야 어떤 오지에 떨어져도 버틸 수 있습니다.
[제2엔진] 시장 스킬(Market Skill): 갈아 끼우는 '실전 무기'
하지만 튼튼한 몸만으로는 전쟁터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적을 제압할 날카로운 무기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 축인 시장 스킬(Market Skill)은 현재 시장에서 즉시 요구되는 '실무 적용력'을 의미합니다.
"직무와 산업이 달라도, 일 잘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무기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마케터, 개발자, 기획자, 영업, HR 등 다양한 직무의 업무 사이클을 분해해보았습니다. 기획 → 실행 → 협업 → 성과 도출 이 흐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공통 분모를 추출한 결과, 마침내 3가지 범용 스킬로 수렴되었습니다.
아래 3가지 스킬은 특정 직무의 전문 지식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 성과를 내는 사람이 공통적으로 장착하고 있는 무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① 디지털 실행력 (Tech) : "얼마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가?"
단순히 툴을 쓸 줄 아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디지털 도구와 AI를 활용해 투입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이고(효율성), 결과물의 임팩트는 극대화하는(효과성) 능력이 있습니까? 남들이 10시간 걸릴 일을 1시간 만에 끝내는 압도적인 속도가 필요합니다.
② 전략적 사고력 (Thinking) : "해법을 설계하는가?"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는 건 기계도 합니다. 복잡한 문제를 구조화하고, "이렇게 하면 해결됩니다"라고 논리적인 해법, 즉 솔루션을 설계하는 힘이 당신에게 있습니까? 시장은 단순 작업자가 아닌, 판을 짜는 설계자를 원합니다.
③ 협업력 (People) : "연결하여 증폭시키는가?"
혼자 100을 하는 것보다, 타인의 강점을 연결해 500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더 비싼 값에 거래됩니다. 당신은 그저 딱 1인분만 하는 사람인가요, 조직 전체의 성과를 증폭시키는 사람인가요?
중요한 점은, 행동 역량(B)이 평생 가는 '몸'이라면, 시장 스킬(S)은 트렌드에 따라 언제든 교체해야 하는 '장비'라는 사실입니다. 10년 전의 무기가 지금은 고철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최신 버전으로 갈아 끼워야 합니다.
[전략변수] 성장 환경(Environment): 내가 '선택하는' 토양
마지막 세 번째 축은 성장 환경(Environment)입니다. 아무리 좋은 엔진(B, S)을 가진 슈퍼카라도, 진흙탕 위에서는 속도를 낼 수 없습니다. B와 S가 '내가 키우는 역량'이라면, E는 '내가 선택하는 조건'입니다. 환경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르는 것입니다. 어디에 몸을 담을지, 언제 옮길지, 그 결정권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많은 직장인이 환경을 운명처럼 받아들이지만, 사실 환경은 가장 강력한 '전략 변수'입니다. 씨앗이 아무리 훌륭해도 시멘트 바닥에서는 꽃을 피울 수 없듯, 당신이 서 있는 곳이 당신을 키우는지 가두는지 다음 4가지로 점검해봐야 합니다.
① 물리적 환경 : 업무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공간과, 내 퍼포먼스를 지원하는 적절한 장비나 시스템이 갖춰져 있나요?
② 정보적 환경 :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양질의 업계 정보를 습득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는 소스가 흐르고 있나요?
③ 관계적 환경 : 함께 고민하며 성장하는 동료, 나에게 뼈 있는 조언과 객관적인 피드백을 주는 리더가 곁에 함께 하나요?
④ 지원 환경 : 회사가 체계적인 코칭이나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제공하나요? 혹은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진단해 줄 시스템적 지원이 존재하나요?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나를 키우는 '비옥한 밭'인지, 아니면 나를 소모시키는 '척박한 땅'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척박하다면, 옮길 것인지 버틸 것인지—그 선택 역시 당신의 전략입니다.
고용가능성, 덧셈이 아닌 '곱셈'의 법칙
마지막으로 이 공식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용가능성 공식은 덧셈(+)이 아니라 곱셈(×)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입니다.
고용가능성 = B(장기 근력) × S(실전 무기) × E(성장 토양)
덧셈의 세계에서는 하나가 부족해도 다른 것을 더 열심히 하면 메울 수 있습니다. 환경이 나빠도 내가 두 배로 노력하면 된다고 믿는 것이지요. 하지만 곱셈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어느 하나가 '0'이라면, 나머지 요소가 아무리 100점이라도 전체 결과는 '0'이 되어버립니다.
[B가 0일 때] 최고의 무기와 환경을 줬지만, 멘탈이 무너져 완주하지 못하는 사람 → 결과 = 0
[S가 0일 때] 밤새워 일하는 성실함은 있지만, 낡은 방식이라 성과가 없는 사람 → 결과 = 0
[E가 0일 때] 탁월한 인재지만, 정치를 강요하는 조직에서 소모되다 퇴사하는 사람 → 결과 = 0
당신이 지금 불안한 이유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혹시 100점짜리 영역에만 계속 에너지를 쏟고, 정작 '0'에 가까운 구멍은 방치하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가 지금 커리어를 '진단'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무작정 더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점수를 깎아먹는 '최소 곱셈 인자'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 그것이 가장 적은 노력으로 내 가치를 높이는 전략입니다.
당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B인가요, S인가요, 아니면 E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