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7
과거의 부모님 세대에게 ‘정년’은 60세 언저리에 찾아오는 명예로운 마침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정년은 어떤 의미인가요? 공식적인 숫자는 여전히 60을 가리키지만, 현장에서 우리가 느끼는 ‘커리어의 유효기간’은 그보다 훨씬 짧고 불규칙합니다.
누군가는 30대에 이미 정체를 경험하고, 누군가는 40대 중반에 조직의 세대교체 바람 앞에서 서늘함을 느낍니다. 중요한 것은 이 위기가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회의 변화 속도는 광속으로 빨라졌는데, 한 조직이 개인을 품어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개인이 조직의 시간표에만 내 인생을 맡기기엔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직이 나를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불안이 엄습할 때, 우리는 흔히 '나이'를 탓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닙니다. 조직 밖으로 나갔을 때 나를 증명할 무기가 없다는 사실, 즉 ‘성장을 멈춘 경력’이 위기의 진짜 실체입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몇 년간은 누구나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바쁜 업무와 일상에 치여 나도 모르게 학습을 후순위로 미루게 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내 경력이면 안정적이야”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가장 위험합니다.
그 달콤한 안주가 10년 뒤 나를 시장의 미아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시장은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3년 전의 방법론은 이미 낡았고, 5년 전의 관리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성장을 일상의 우선순위에 두는지 아니면 관성에 몸을 맡기는지에 따라 10년 뒤 당신의 위치가 결정됩니다.
평생 현역으로 살고 싶다면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 선택은 단순히 “조직에 남을까, 나갈까”가 아닙니다.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나의 가치를 계속 증명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1. 안에 남는다면: '손'이 아니라 '판'으로
조직 안에 남기로 했다면 역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30대까지가 직접 일을 해내는 '손'의 영역이었다면, 그다음 단계는 구조를 읽고 방향을 설계하는 '판'의 영역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으로, 개인 성과를 내는 사람에서 타인의 성장을 만드는 사람으로 이동하십시오. 단순히 연차가 쌓인 숙련공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구조적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조직 내에서 자신의 유효기간을 스스로 늘려가는 핵심적인 경로 중 하나입니다.
2. 밖으로 나간다면: 경력이 아니라 '결과'로
조직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나를 지켜주던 보호막은 사라집니다. 이제 시장은 당신의 과거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당신이 지금 당장 해결해줄 수 있는 현실적인 고통"에만 반응합니다.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실력을 시장의 언어로 끊임없이 제안하고 증명하는 과정입니다. 밖에서는 오직 당신이 실제로 만들어낸 결과만이 당신의 다음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평생 현역으로 산다는 것은 지금의 업무 방식을 70세까지 붙들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전문성의 본질은 유지하되, 그 '출력 방식'을 완전히 전환하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같은 전문성, 다른 무대
제가 만난 한 분은 20년간 대기업 HR 리더로 일했습니다. 채용공고를 쓰고, 면접을 진행하는 것부터, 전사 육성체계를 설계하는 일이 그분의 일상이었죠. 그런데 45세가 되던 해, 조직개편으로 자리가 사라졌습니다. 처음엔 무너졌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20년간 해온 일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 아니고, 그 일을 하는 방식만 바뀌면 된다는 것을요. 그 후, 그분은 더 이상 인사 전문가나 리더 포지션 공고를 찾아보고 이력서를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3개월 단위 채용 프로젝트 파트너"를 제안했고
스타트업 대표들을 모아 "첫 HR 담당자 뽑기 전 꼭 알아야 할 것들" 강의를 시작했으며
자신이 20년간 쓴 합격 자소서 템플릿을 정리해 취준생 대상 유료 콘텐츠로 판매했습니다
나라는 알맹이는 그대로지만, 나를 보여주는 '형태'를 완전히 바꾼 것입니다. 한 회사의 정규직 자리에 앉아 월급을 받는 대신, 시장의 여러 지점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흐르는 방식으로요.
본질적 강점, 새로운 그릇
어떤 분은 더 과감했습니다. 15년간 제조업 엔지니어로 일하며 복잡한 도면을 분석하고 정밀하게 설계하던 분이 목공 YouTube 콘텐츠 제작자로 변신했습니다.얼핏 보면 '기계'에서 '나무'로 업종이 완전히 바뀐 것 같았지만, 생각해보니 이분의 진짜 알맹이는 복잡한 제작 공정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시각화하고 설계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엔지니어로서의 정밀함과 설명 능력을 살려 '왕초보 대상 목공 교육 채널'을 만들었고, 이제는 온라인 클래스와 공방 컨설팅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었습니다. 엔지니어 시절 다루던 정밀함이 이제는 '왕초보도 따라 하는 목공 가이드'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치가 된 것이죠. 겉보기엔 전혀 다른 일처럼 보이지만, 내가 그동안 쌓아온 '일하는 방식', '문제를 푸는 태도' 같은 본질을 새로운 그릇에 담은 것입니다.
이 두 분의 변화를 보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그 형태가 아닌, 변화하는 시장 속에서도 내 본질적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곳에 스스로를 내놓는 '용기'라는 것을요.
일의 형태를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경력을 ‘조직의 직함’이 아닌 ‘시장의 해결책’으로 번역하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매팀 15년", "총무팀 과장"처럼 조직에서 준 이름표만 가지고 시장에 나오는 것을 목격합니다. 하지만, 어느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재차 강조하지만, 시장의 선택을 받을 만큼 대단히 결정적인 요소는 아닙니다. 시장은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를 듣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과 경력을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요소, 그리고 갈증이 큰 시장 니즈를 담아 번역해야 합니다. "구매팀 15년"이라는 조직의 언어를 "연간 500억 규모 부품 조달 비용을 20% 절감하는 프로세스 설계자"라는 시장의 언어로 바꾸는 것입니다. "10년 차 총무"라는 모호한 직함 대신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고 스마트 워크 환경을 구축하는 오퍼레이션 전문가"라고 스스로를 재정의해야 합니다.
당신의 이름표를 ‘직함’에서 ‘솔루션’으로 바꾸는 순간, 비로소 조직이라는 한 칸짜리 서랍에서 벗어나 시장 전체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열립니다.
커리어의 위기는 종착역이 아닙니다. 오히려 조직에 매몰되어 있던 ‘나’를 건져 올려, 진짜 내 일을 하는 ‘직업인’으로 거듭나라는 시장의 강력한 신호입니다. 그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겠지만, 그것은 당신이 그동안 단단한 경험의 나이테를 쌓아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 나이테를 조직 안에만 가두지 마십시오. 당신의 숙련된 감각은 시장이 간절히 기다려온 해답일 수 있습니다.
조직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때로 성과와 효율로만 측정되는 차가운 시선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입니다. 조직이 부여한 역할에 나를 가두지 않고, 어디서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만의 솔루션'을 가진 직업인으로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것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성장을 멈추지 않는 한, 당신의 계절은 결코 저물지 않습니다. 당신은 오늘, 이름 뒤에 붙은 직함 대신 어떤 '솔루션'을 이력서 첫 줄에 적으시겠습니까? 그 한 문장이 당신을 정년 없는 현역의 세계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티켓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