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의 기술 : 평가를 비난이 아닌 데이터로 읽는 법

EP 18

매년 1, 2월은 직장인에게 가장 설레기도, 동시에 가장 낙담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전년도 성과에 대한 조직과 리더의 평가가 마침내 오픈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뜨거운 한 해를 보냈다고 자부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평범한 점수나 낮은 등급을 확인하는 순간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집니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아 서늘한 배신감마저 느껴지곤 하죠.


사실 이렇게 말하는 저 또한 사회초년생 시절, 리더와의 평가 면담 과정에서 받았던 그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내가 그토록 치열하게 노력했던 시간들이 왜 인정받지 못했는지에 대한 억울함과 서운함이 밀려와 한동안 마음을 다잡기 어려웠습니다. 그날 밤은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고, 내가 쏟아부은 열정이 모두 물거품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냉정하게 되돌아보면 그날의 그 아팠던 피드백은 저를 가장 강렬하게 자극했던 성장의 자극제였습니다. 감정의 파도가 가라앉은 뒤, 저는 제가 보지 못했던 저의 사각지대를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제 커리어를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고, 감히 그 피드백 덕분에 이후 고속 성장의 궤도에 올라탈 수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평가를 대하는 두 가지 함정

낮은 성적표를 받았을 때 우리는 흔히 두 가지 함정에 빠집니다. 하나는 '자아의 붕괴'입니다. 회사의 등급을 나의 인격과 가치에 대한 점수로 치환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냉소적 부정'입니다. "회사가 뭘 몰라", "리더가 무능해서 그래"라며 결과를 운이나 정치 탓으로 돌리고 귀를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주도적인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우리에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분리하라는 것은 결과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결과에 묻어있는 '내 감정'을 떼어내고, 그 안에 담긴 '성장의 단서'만 냉정하게 추출하라는 뜻입니다. 분리하되, 그 결과를 부정하거나 잘못된 평가라고 치부하는 것 또한 나를 위한 행동이 아닙니다. 분명 그 결과에는 어떠한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숫자가 아닌 '피드백의 밀도'에 집중하기

낮은 평가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리더와의 관점 차이든, 조직의 전략 변화든, 혹은 내가 보지 못한 나의 역량 부족이든 말입니다. 숫자나 등급이라는 껍데기에만 연연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면 그 안에 담긴 진짜 메시지를 읽지 못합니다.

커리어의 주도권을 쥔 사람은 결과에 낙담하는 대신 리더에게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생각한 성과와 회사의 기대치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었는가?" "내가 집중한 에너지가 조직의 우선순위와 맞닿아 있었는가?" "내년의 성과를 위해 보완해야 할 구체적인 역량은 무엇인가?"

이것은 회사를 만족시키기 위한 구걸이 아닙니다. 지금 내 커리어가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가치로 읽히는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확인하는 가장 실질적인 검증 과정입니다. 평가 등급과 결과, 그 자체에 매몰되기 보다는, 당신의 커리어 유효기간을 늘려줄 '피드백의 밀도'를 챙기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조직 밖의 시선 : 고집이 아닌 '주체적 실험'으로

피드백은 조직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일의 형태 전환'을 시도하며 조직 밖으로 나가는 순간, 더 수많은 평가의 칼날 앞에 서게 됩니다. 창업이나 새로운 시도를 준비할 때, 주변에서는 아주 쉽게 "그건 이래서 안 돼", "너무 위험해"라며 안 되는 이유를 나열하곤 하죠.


하지만 이때도 '분리의 기술'은 필요합니다. 타인의 부정적인 말에 귀를 닫고 내 생각에만 갇히는 아집을 부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말 사이에서 내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리스크를 발견하되,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철저히 나의 선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커리어 주도권의 핵심은 모든 순간에 나의 선택으로 도전하고, 실패하고, 제안하고, 다시 전환하는 단계를 직접 경험하는 데 있습니다. 타인의 평가는 그들의 경험치 안에서 내리는 주관적인 결론일 뿐입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나의 한계로 규정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안 되는 이유를 수집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그 피드백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되게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주체가 되십시오. 그래야만 비로소 조직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나라는 브랜드를 스스로 증명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가는 도구일 뿐, 성장의 주체는 당신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야기해 온 커리어핏, 즉 커리어 주도권이자 자생력은 모두 '나'라는 브랜드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번 평가 결과나 주변의 차가운 시선은 그 브랜드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데이터 포인트일 뿐입니다.


회사가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며, 타인의 평가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마주하는 날카로운 피드백은 우리를 '정년 없는 현역'으로 만들어줄 가장 값진 거름이 됩니다. 낮은 등급이나 부정적인 평가에 고개를 숙이거나 마냥 낙심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대신 그 결과를 디딤돌 삼아 당신의 유효기간을 갱신할 다음 스텝을 설계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전략적이고 현명한 선택입니다.


결과로부터 마음을 분리되, 그 안에 담긴 성장의 기회는 절대 놓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커리어의 주도권을 쥔 사람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조직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저에게는 오히려 그 '피드백'에 대한 지독한 갈증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조직 안에서는 리더의 한마디가 화살처럼 날아와 꽂히는 아픔이었지만, 밖으로 나와 보니 그 화살은 내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잡아주던 이정표였음을 깨닫습니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 줄 리더도, 정기적인 평가 시스템도 없는 야생에서는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내 솔루션이 시장에서 여전히 유효한지 확인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고 외로운 일이 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그 시절의 날카로웠던 피드백들이 그립기도 합니다. 혹시 지금 예상치 못한 결과에 마음을 다치셨나요? 그렇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당신은 지금 가장 안전한 환경에서, 당신의 유효기간을 늘려줄 가장 비싼 컨설팅을 받는 중이라고요.


그 피드백을 어떻게 소화해 내 피와 살로 만들지는 오직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부디 오늘의 아픔을 성장의 연료로 번역해내는 주도적인 직업인이 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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