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6. 커리어핏이 높은 사람들의 미래
"회사가 나 없으면 안 돌아갈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퇴사를 앞둔 이들이 허탈하게 웃으며 가장 많이 하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냉정하게 말해 회사는 당신이 없어도 어떻게든 돌아갑니다. 시스템은 없어지거나 손상된 부품을 언제든 대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짜 비극은 회사가 나 없이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회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커리어의 주도권을 쥔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커리어핏(CareerFit)'을 갖는다는 것의 종착지는 결국 하나입니다. 바로 [선택권]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이 조직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더 넓은 바다로 나갈 것인지를 조직이 아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상태 말이죠.
많은 기업과 경영자가 직원들에게 '주인 의식'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 회사 밖에 대안이 없는 사람에게 주인 의식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합니다. 당장 내일 이 회사가 나를 해고했을 때 갈 곳이 막막한 사람이 어떻게 소신 있게 제안하고, 당당하게 NO를 외칠 수 있을까요?
회사 안의 장면을 떠올려봅니다. 회의 시간에 리더가 명백히 잘못된 방향을 제시합니다. 속으로는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네, 알겠습니다"입니다. 왜일까요? 밖에 나가면 갈 데가 없다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주인 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어쩌면 족쇄를 채워놓고 자유롭게 뛰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직 안에서 가장 이 곳의 주인처럼 일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이 문을 나설 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회사가 주는 월급에 내 삶의 운전대를 온전히 맡기지 않습니다. 시장에서의 내 가치를 알고 있고, 내 실력을 증명할 무기를 이미 손에 쥐고 있습니다.
떠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회사는 '생존을 위한 유일한 생명줄'이 아니라, 내 역량을 발휘하고 가치를 교환하는 '선택된 플랫폼'이 됩니다. 이때 비로소 비굴함이 사라진 진짜 주인 의식이 싹틉니다. 내가 원해서 이곳에 머물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무기를 갈고닦고, 현장에서 작은 제안을 던지는 과정이 반복되면 당신의 손에는 자연스럽게 '선택권'이라는 카드가 쥐어집니다. 그렇다면 이 카드를 쥔 사람의 일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질까요? 조직 내 HR 현장에서 수많은 인재를 만나며 그들이 가진 세 가지 결정적인 감각의 차이를 목격했습니다.
첫째, 판단의 기준이 '생존'에서 '성장'으로 바뀝니다.
선택권이 없는 사람에게 모든 판단의 기준은 '여기서 버틸 수 있느냐'입니다. 새로운 기회가 와도 리스크부터 계산하고, 불합리한 지시 앞에서도 일단 수긍합니다. 하지만 선택권을 쥔 사람은 대화의 결이 다릅니다. "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넘어 "이 조직이 나의 다음 성장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이 질문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을'이 아닙니다. 조직과 개인이 서로의 가치를 교환하는 대등한 파트너가 됩니다. 이 당당함이 역설적으로 조직 내에서 당신을 더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듭니다.
둘째, 거절이 두렵지 않은 '단단한 자아'를 얻습니다.
조직의 불합리함이나 방향성에 의문이 생길 때, 대안이 없는 사람은 침묵을 선택합니다. 한 번의 침묵이 두 번이 되고, 그 침묵이 쌓여 무기력이 됩니다. 어느 순간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채,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죠.
하지만 선택권을 가진 사람은 '거절'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은, 이곳이 아니어도 나를 증명할 공간이 있다는 확신에서 나옵니다. 물론 모든 것에 반기를 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 내 소신을 지킬 수 있는 힘. 그것이 선택권이 주는 진짜 선물입니다.
셋째, 회사의 성패와 나의 가치를 분리하게 됩니다.
회사가 잘 나갈 때 자만하지 않고, 회사가 어려울 때 과하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회사의 성패는 시스템의 영역이지만, 내 가치는 시장의 영역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기뻐하되, 그것이 곧 나의 가치 상승이라고 착각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위기에 처하면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되, 그것이 곧 내 인생의 실패라고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이 건강한 거리감이 당신을 소진(Burn-out)으로부터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보호막이 됩니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말했습니다.
"자유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커리어에서의 자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기 싫은 일,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조직의 방향, 나를 소모하기만 하는 관계들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힘. 그 힘은 내가 언제든 이 판을 떠나 새로운 판을 짤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옵니다.
지금 당신의 상태를 점검해 보세요. 당신은 지금 이 회사를 '선택'해서 다니고 있나요? 아니면 '대안이 없어서' 버티고 있는 상태인가요? 만약 후자라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상태에서 시작하니까요. 중요한 건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느냐, 아니면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느냐입니다.
무책임하게 당장 사표를 던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사직서를 품고 있으라는 흔한 위로도 아닙니다. 대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실체적인 실력'을 매일 갈고닦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시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각을 유지하고, 내 경험을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을 쌓고, 작은 제안이라도 던지며 현장 감각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진짜 '떠날 준비'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준비된 사람일수록 조직은 더 붙잡고 싶어 합니다.
떠날 수 있기에 비로소 주인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회사가 당신의 인생을 결정하게 두지 마세요. 당신이 회사를 선택하고, 당신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커리어의 주인'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