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5. 커리어 실전 트레이닝 루틴 ⑤
"조금만 더 준비되면."
"이것만 끝나면 시작해야지."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
우리는 늘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질문해보겠습니다. 그 완벽한 타이밍, 정말 온 적 있나요?
지금까지 우리는 관점을 바꾸고, 정체성을 세우고, 시장 감각을 키우고, 나를 증명하는 무기까지 갈고닦았습니다. 이제 무기는 손에 쥐었습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주어진 환경에 반응하기만 하는 '소비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흔히 정답이 어딘가 높은 곳이나 깊은 서적 속에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커리어, 다시 말해 나만의 업(業)은 진짜 정답은 책상 앞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내디딘 '발 끝'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뛰어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작은 제안'이라는 실험입니다. 큰 결단을 내리는 힘은 타고난 배짱이 아니라, 작은 제안들을 통해 현장에서 전달되는 감각을 꾸준히 익힌 결과입니다. 내 생각을 밖으로 던져봐야 비로소 내 실력의 실체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은 단순히 '회사'라는 칸막이 속이 아닙니다. 거대한 산업 생태계이자, 끊임없이 수요와 공급이 충돌하는 시장 그 자체입니다.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첫째는 시스템이 설계한 궤도 위를 달리기만 하는 '부품'입니다. 남이 정해준 규칙 안에서 시키는 일만 완벽하게 해내는 것에 안주합니다. 이들에게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단순히 월급과 맞바꾸며 사라지는 '비용'일 뿐입니다. 하지만 궤도를 달리는 기차는 결코 스스로 방향을 바꿀 수 없습니다. 궤도가 끊기거나 기차가 낡으면 언제든 교체됩니다.
둘째는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설계자'입니다. 이들은 "원래 그래요"라는 말 대신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는 제안을 던집니다. 제안을 던지는 순간, 당신은 시스템을 단순히 소비하는 사람에서 시스템의 가치를 높이는 '생산자'로 포지션이 바뀝니다. 제안은 권한이 생겨서 하는 게 아닙니다. 제안을 하기 때문에 비로소 내 커리어의 주인이라는 권한이 생기는 것입니다. 생산자로 보낸 시간은 당신의 이력에 복리로 쌓이는 '자산'이 됩니다.
저는 늘 제 안의 두 자아가 싸우는 것을 느꼈습니다.
첫 번째 자아 A는 '완벽주의자'입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완벽한 설계도가 필요하다고 믿고, 실패해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모든 변수를 통제하려 합니다. 결국 시스템의 부품으로 남게 되는 방어적 선택이죠. 두 번째 자아 B는 '실행가'입니다. 설계도는 부족하지만 일단 현장으로 나갑니다. 작은 개선안을 던져보고, 모르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며 몸으로 피드백을 받아냅니다. 일단 부딪혀보며 답을 찾으려는 능동적인 선택입니다.
여러분의 안에는 지금 누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나요?
사실 고백하자면, 오랫동안 저를 지배했던 건 늘 A였습니다. 저 또한 언제나 완벽한 상태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실수해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모든 변수가 통제된 설계도를 손에 쥐어야만 비로소 안심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저와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누군가를 곁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그의 완벽주의는 '철저함'보다는 오히려 '지체됨'에 가까웠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광속에 가까운 지금의 세상에서는, 완벽을 기하며 얻는 안정감보다 그 과정에서 놓치는 기회의 비용과 경험의 손실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요.
이후 회사 밖으로 나와 수많은 사람의 커리어 고민을 듣고 삶의 솔루션을 함께 도출하는 과정을 거치며, 저는 그 확신을 더 굳히게 되었습니다. 완벽주의가 낳는 '실행의 부재'는 단순히 커리어 성장을 가로막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과 연결될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내 삶의 반경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고갈시키는 치명적인 결핍을 만듭니다.
책상 위에서 깍두기처럼 예쁘게 썰어놓은 기획서보다, 현장에서 거칠게 부딪히며 다듬어진 제안 한 문장이 내 삶을 더 풍요로운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내 안의 A를 잠재우고 B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지 6개월, 저의 세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져 있었습니다.
완벽주의는 우리를 실패로부터 지켜주는 방패 같지만, 사실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게 가두는 감옥이기도 합니다. 100% 준비되는 날은 오지 않습니다. 70%쯤 됐다 싶으면, 그때가 움직일 타이밍입니다. 나머지 30%는 '제안'이라는 행동을 통해 현장에서 채워가면 됩니다.
혹시 제안이 거절당할까 봐 두려우신가요? 생산자의 세계에서 거절은 '실패'가 아니라 어쩌면 '아니오'라는 이름의 가장 정확한 시장 데이터일지도 모릅니다. 그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 자체가 당신의 설계 역량을 높여주는 실무 훈련입니다. 상상 속에서는 모든 게 문제인 것 같지만, 막상 시장에 작은 제안 하나를 툭 던져보면 상황은 명확해집니다. '아, 이 부분은 중요하지 않네?', '오히려 이 사소한 포인트에 반응이 오네?' 같은 살아있는 피드백이 쏟아집니다. 현장의 반응, 예상 못한 질문, 생각지 못한 방향의 피드백. 이런 것들은 오직 세상에 자신을 내놓고, 던져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배움입니다.
"그때 시작할걸."
우리는 늘 과거의 어느 시점을 후회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도 미래의 어느 날에는 "그때"가 됩니다. 1년 후의 내가 오늘을 돌아본다면, 뭐라고 말할까요? "그때 시작하길 잘했어"일까요, 아니면 또다시 "그때 시작할걸"일까요? 어설픈 시작이 완벽한 준비를 이깁니다. 정답은 당신이 던진 제안을 통해 매순간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표현되지 않은 실력은 없는 실력과 같습니다. 오늘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던질 수 있는 아주 작은 제안은 무엇인가요?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주 사소한 효율의 개선이라도 좋습니다.
"이 부분, 이렇게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그 한 문장이 시스템의 부품에서 생태계의 설계자로 건너가는 첫걸음이 됩니다. 단순히 "오늘 무슨 일을 했다"가 아니라 "이런 제안을 던졌고 이런 반응을 얻었다"고 기록할 수 있는 하루를 만들어보세요. 그것이 당신의 시장 가치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콘텐츠가 됩니다.
남은 건 한 걸음을 내딛는 것뿐입니다. 오늘, 무엇부터 제안해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