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의 혁신재단을 투자기구로 (1/3)

「협상이라는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by James

1. 배경

내가 경험한 협상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하나 꼽으라면, 국제기구에서 진행했던 중재 프로젝트를 떠올리게 된다. 당시 나는 국제금융기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었다. 여러 기관, 여러 전문가,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 자체도 복잡했지만, 무엇보다 이 일은 내가 익숙해 있던 사모펀드나 사기업 투자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일이었다.


가장 크게 느껴졌던 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의 틀이 통째로 흔들린다는 감각이었다. 상식, 문화, 경제관념, 그리고 ‘합리적이다’라고 믿어왔던 기준들까지. 예를 들어 보자. 한국, 미국, 영국 같은 곳에서 물이나 가스 같은 유틸리티의 결제 시스템을 효율화한다고 하면, 우리는 거의 자동적으로 몇 가지 해법을 떠올린다. 자동화를 통한 인건비 절감, 결제 시스템의 디지털화, 카드 결제 비중 확대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내가 맡았던 개발도상국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인건비는 훨씬 저렴했고, 정전은 일상이었으며, 무엇보다 현금 기반 경제(cash-based economy)가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 한국이나 서구권에서는 결제가 현금에서 카드, 그리고 모바일로 단계적으로 넘어왔지만, 이곳은 카드 단계를 거의 거치지 않은 채 핀테크를 먼저 도입하려는 흐름이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발전 경로와 더 닮아 있었다.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한국에서는 거의 접하지 못하는 수준의 문맹률도 여전히 존재했다. 이런 환경에서 ‘효율화’라는 단어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졌다. 자동화가 답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안내하는 것이 먼저였다. 비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요금을 제때 낼 수 있는 환경과 방식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때 처음 느꼈다. 내가 익숙한 기준을 그대로 들고 와서 판단하거나 설득하려는 순간, 협상은 이미 어긋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어떤 환경에서는 숫자보다 먼저, 전제를 내려놓는 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아는 ‘효율화’는 여기서 효율적이지 않았다


익숙한 기준으로 접근하는 순간, 협상은 시작도 하기 전에 틀어질 수밖에 없다. 상대가 틀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제한 기준이 그곳에서는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협상을 해야 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컨설팅이나 투자에는 대부분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이 명확하다면 따르거나 포기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는 그렇게 선명하지 않다. 선택지는 여러 개이고, 이해관계자는 더 많다. 그렇다면 나를, 그리고 내가 속한 기관을 신뢰해 준 고객과 파트너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원하는 방향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그들 역시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번 케이스는 한 국제 NGO가 개발도상국에서 운영하던 혁신재단을,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해관계자를 포함해 투자기구로 전환한 사례다. 내가 자문하던 프로젝트 중 하나였고, 단순한 구조 변경이 아니라 관계와 역할, 그리고 목적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 당시,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2026년을 포함해 최근 몇 년은 유난히 예측이 어려운 시간이다. 코로나라는 전례 없는 팬데믹이 전 세계를 멈춰 세웠고, 그 이후에도 기존의 상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이어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대만과 중국, 남한과 북한까지. 지정학적 긴장은 뉴스가 아니라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우리가 의도한 방향으로 현상을 움직일 수 있을까. 더 근본적인 질문도 따라왔다. 협상을 하나의 선택지로조차 생각하지 않는, 협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직 인지하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대화의 자리로 초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었다.



2. 협상의 목표

일반적인 투자자들이 선뜻 관심을 갖는 영역은 아니지만 내가 합류하기 전부터, 우리 팀은 대정부 기관이나 주요 공공·국제기관을 대상으로 한 자문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다. 단기적인 수익보다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장기적으로 새로운 기회의 창구가 될 수 있는 능동적인 포지션을 택한 셈이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플랫폼이 하나 있었다. 회사와 한 아이비리그 대학교가 공동으로 운영하던 싱크탱크였다. 내가 이 싱크탱크의 센터장을 맡게 되면서, 개발도상국의 혁신재단을 자문하는 프로젝트 또한 자연스럽게 이어받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유독 애착이 갔다. 국제기구에서 일한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프로젝트이기도 했고, 투자업계에서 일하면서도 재무적 성과를 넘어 사회와 커뮤니티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 금융기구와 물 관련 국제기관에서 쌓아온 나의 전문 영역과 재단의 특성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연결감이 더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프로젝트를 단순한 일회성 컨설팅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이 관계를 보다 장기적인 협력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아이디어를 단발성으로 지원하는 플랫폼에서, 새로운 지역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까지 연결하는 구조로. 즉, 혁신재단을 투자기구로 전환하는 그림이었다. 이 방식에서 우리는 싱크탱크로서 운영 및 전략 컨설팅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가 가장 자신 있는 투자에 대한 자문 혹은 직접 적인 참여 또한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3. 상대의 목표

그들이 원하던 것은 ‘성장’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성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던 것은 단 하나, 존속이었다.


그리고 그 전환점이 된 사건이 코로나였다. 팬데믹은 갑작스러웠고, 준비할 시간은 없었다. 재단의 연간 일정은 하나둘씩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이미 계획되어 있던 프로그램들도 중단됐다.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에서, 조직은 빠르게 몸집을 줄이기 시작했다. 인력은 감축됐고, 일부 프로젝트는 사실상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NGO를 비롯한 기존 스폰서들은 여전히 재단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혁신이라는 가치에도 공감했고, 이 플랫폼이 지역 사회에서 해온 역할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혁신을 논하기에는, 우리 모두가 당장 눈앞에 닥친 팬데믹과 싸우고 있었다. 생존이 먼저였고, 실험은 그다음이었다.


상황은 국가마다 달랐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정치적 불안정성까지 겹쳤다. 팬데믹, 정권 교체, 정책 방향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이전까지는 ‘다음 단계’를 이야기하던 회의가, 언제부터인가 ‘이번 분기를 넘길 수 있을지’를 점검하는 자리로 바뀌어 있었다.


그 시점에서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이 상황을 버티는 것.

재단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외부 자금을 유치하거나, 기존 파이프라인과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단발성 후원이나 프로젝트성 지원만으로는 더 이상 조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대표 개인의 고민도 조심스럽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몇 년 안에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성공한 산업가이자 이 재단을 설립하고 이끌어온 창립자였다. 이 플랫폼은 그의 커리어가 아니라, 인생의 일부였다. 그렇기에 은퇴라는 선택은 단순한 개인의 계획이 아니라, 재단의 방향과 직결된 문제였다.


결국 그들의 고민은 하나로 모이고 있었다. 성장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 조직이 계속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다만 그 해답을, 그들 스스로도 아직 분명하게 그려보지는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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