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지나면

단편 영화

by 고유빈

9월이 지나면

한국/단편

감독 주연

고형동 조현철 임지연 윤희진


줄거리

공모전 설계도 제출을 하루 앞두고 선영의 설계도가 사라진다. 선영은 지연을 의심하고, 승조는 지연을 감싸준다.


※ 본 감상평은 작품의 해석을 포함하고 있어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관람 전 독자분들께서는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늘 감사합니다.

영화는 지연이 선영의 설계도를 훔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승조는 지연에 대한 마음이 깊어져 그녀를 지켜주기로 한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임지연 배우와 조현철 배우의 풋풋했던 시절을 만날 수 있었다. 두 배우의 청초한 모습과 곤히 담은 연출은 앳된 첫사랑, 그리고 그 시절을 떠올린다.

우리는 저마다 사랑에 빠지면서 사소한 계기나 사건으로 어느 한 지점에 들어선다. 어색한 공기로 가득 찬 순간, 사랑에 빠지는 순간, 실망을 안기는 순간, 내면의 성장이 이뤄지는 순간. 그렇게 관계가 깊어질수록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우리 앞에 도착한다. 승조와 지연 또한 그렇다.


대면

승조는 지연의 건축 모형 제작을 돕기 위해 그녀와 시간을 보낸다. 그 과정에서 지연에 대한 관심이 은근히 스며든다. 하지만 지연은 승조를 그저 선배로만 바라본다. 이에 승조는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감정을 감춘 채 담담한 말만을 건넨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언제나 솔직함이 배어 있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승조가 존경하는 건축가에 대한 분명한 기준에서 그의 순수함과 진솔함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연출이 이어진다. 승조가 말하는 존경하는 형의 기준을 설명하며 네 명의 인물이 차례로 등장한다. 르 코르뷔지에, 루이스 칸, 안도 다다오, 마지막으로 마틴 스코세이지.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 속에 뜬금없이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모습을 드러내며, 아이러니한 느낌을 준다. 이는 감독이 존경하는 영화감독을 삽입해 의도된 연출로 읽힌다.


각인

자신의 이상형인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를 연상시키는 지연을 본 승조는, 설렘 속에 그녀를 마음에 새긴다. 그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은 사랑 앞에서 느끼는 수줍음과 동시에, 감정을 드러내려는 용기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 나날들에 지연 역시 서서히 승조에게 빠져든다.

중앙정보부 강당에 민주화기념관을 설계하려는 지연은, 만일 중앙정보부가 변모한다면 그것만큼 통쾌한 일도 없을 것이라 말하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한편 그녀는 그 공간이 한때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한다. 이는 시대가 변해도 흔적은 남는다는 사실 아래, 그 가치와 본질을 기억하길 바라는 감독의 숨은 메시지처럼 보인다. 또한 처량하게 남은 자리에 무의미함을 느낀다.


상심

우연히 지연이 훔친 선영의 설계도를 발견한 승조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자신이 온전히 사랑했던 이의 이면을 마주한 데서 오는 실망이자,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적 충돌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설계도를 돌려놓으려던 지연은 누군가에게 들켜 도둑으로 몰린다. 위기의 순간, 승조는 지연에게 상심을 드러내면서도, 그녀를 향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범인을 자처한다.


성장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을 위해 희생한 승조의 마음을 알게 된 지연은 그에게 함께 만든 건축 모형을 선물하며 자백했음을 알린다. 그와 함께한 나날들이 어느덧 그녀를 성숙하게 만든 것이다. 지연은 승조에게 9월이 지나면 좋은 일만 생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것은 곧 그녀 자신의 바람이기도 하다.



'9월이 지나면’은 두 갈래의 의미를 품는다. 과오와 반성을 뒤로하고 새롭게 도약하려는 소망, 그리고 미숙한 시절을 지나 성숙해진 자신으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영화는 인간 내면의 성장을 청초했던 첫사랑의 시절로 표현했다. 영화 속 지연처럼 누구에게나 죄책감을 간직한 사연 하나쯤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처음부터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어리석었던 시절을 후회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우리 역시, 어쩌면 지연처럼 9월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지 않을까?



넌 나카야마 미호한테 고맙게 생각해.
(승조)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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