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집

단편 영화

by 고유빈

남매의 집

드라마/스릴러/단편


감독

조성희

주연

박세종 구교환 이다인


줄거리

비좁고 초라한 반지하에 부모 없는 오누이가 스스로 갇혀 지낸다. 아버지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그들의 집에 어느 날 누군가가 침입한다. 5분만 있다가 나간다던 그는 일행인 듯 보이는 괴한 둘을 집으로 들이며 이런저런 핑계들을 늘어놓기 시작하는데….


※ 본 감상평은 작품의 해석을 포함하고 있어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관람 전 독자분들께서는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늘 감사합니다.

영화 <남매의 집>은 제8회 미장센단편영화제 수상작이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된 작품에만 대상을 수여하는 만큼, 이 영화제는 단편영화계에서 상징적인 권위를 지닌다. 그렇기에 <남매의 집> 역시 그 형식과 서사, 연출 방식에 있어 충분히 분석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의 흐름에 따라 의도된 연출을 해석하고자 한다.


남매의 집

남매가 사는 집은 다가구 주택의 지하다. 아버지는 “지하이니 괜찮다”며 밖에 나가지 말라고 아이들을 안심시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반지하의 특성은 남매를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며 오히려 미스터리한 공포를 만들어낸다. 주인공이 처한 세계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누군가로 인해 재앙과도 같은 상황에 놓여 있지만, 반지하라는 공간은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게 만든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겨우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다리뿐이다. 결국 오빠는 낯선 이들의 발과 걸음걸이만으로 상황을 짐작해야 하고, 그 제한된 시야는 작은 움직임에도 쉽게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이는 제약된 시야가 만든 공포이자 그들이 머무는 집이 닫힌 형식의 프레임을 만들며 불안정한 안식처가 된 셈이다.


현관문

남매의 집에 위치한 현관문에는 흥미로운 연출 장치가 숨겨져 있다. 영화가 끝을 향해 갈수록 관객은 이 현관문이 안에서는 잠글 수 없고, 밖에서는 쉽게 열 수 있는 구조임을 눈치채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찾아온 외부인들은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집 안의 남매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요구한다.

이 설정은 타인의 집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고 집주인의 초대를 받아야만 들어올 수 있다는 흡혈귀 서사의 규칙, 즉 드라큘라에서 정립된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문은 물리적인 장치이면서 동시에 초대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결국 남매가 문을 여는 순간, 외부의 위협은 비로소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다. 비슷한 예로 <씨너스: 죄인들>이 있다. 또한 현관문은 남매의 무기력한 경계를 은유한다.


라오우(구교환)

라오우는 만화 북두의 권의 라오우에서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세기말, 공포의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패왕’의 이미지처럼, 영화 속 라오우 역시 침입자들 사이에서 리더 격의 위치에 놓여 있다. 이러한 대표성 때문에 그는 침입자들이 상징하는 ‘아동 학대’의 여러 양상 가운데서도 특히 정서적 학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표현된다. 사실 정서적 학대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형태의 폭력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상처를 남기는 가장 흔하면서도 일상화된 학대이기도 하다. 부모는 때때로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모욕감을 주기도 하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 부부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정서적인 위협을 준다. 작품 속에서 라오우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남매를 위협한다. 집에서 나가 달라는 남매의 요구에 그는 오히려 “그렇게 강요하는 것은 너무 폭력적인 것 아니냐”라고 말하며 상황을 뒤틀어 가스라이팅을 시도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남매에게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요구를 내세운다. 또한 남매가 보는 앞에서 일행을 구타한다. 이를 통해 라오우의 행위는 아동의 정서 학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대머리(조성환)

대머리는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인상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연출은 그가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인물이기에, 그의 폭력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정당화되는 배경을 형성한다. 극에서 대머리는 오빠에게 누우라고 지시하며 살해를 시도한다. 그 순간 오빠가 보이는 안절부절못하는 행동은, 학대를 겪는 아이들이 느끼는 극도의 공포와 무력감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외에도 앵무새를 죽이는 등을 통해 신체 학대를 표현했다.


안경(백승익)

작품 속 안경은 가장 불쾌한 인물로 연출된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성적인 학대 때문이다. 여동생을 호시탐탐 노리는 안경은 그의 대사를 통해 아이를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인물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노골적인 표현을 통해 감독은 성적 학대를 특히 문제적인 폭력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동시에 이러한 연출은 관객에게 강한 불쾌감을 유발하며, 자연스럽게 감독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도록 만든다.


유기/방임

작품 속에는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존재하는 학대가 있다. 바로 유기 혹은 방임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학대를 내포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아버지’다. 그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집을 오랜 기간 떠났다. 그 시간의 경과는 빈 밥통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까지 그는 아무런 모습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부재는 또 다른 형태의 학대로 작동되며, 아이들이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남매의 집>은 미장센단편영화제 수상작에 걸맞게 다양한 상징과 미장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해석의 여지가 짙은 영화인 만큼 관객들의 호불호 또한 분명하게 갈린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며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학대의 정서를 체감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를 바라보는 가장 정직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또한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단지 스크린 속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현실이며, 어쩌면 영화보다도 훨씬 더 비참할 수 있다.




강요하는 거는, 그건 너무 폭력적인 거 아니에요?
(라오우)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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