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영화
드라마/시대극
감독
장항준
주연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줄거리
계유정난이 조선을 뒤흔들고 어린 왕 이홍위는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길에 오른다. 한편, 강원도 영월 산골 마을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는 먹고살기 힘든 마을 사람들을 위해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촌장이 맞이한 이는 왕위에서 쫓겨난 이홍위였다. 유배지를 지키는 보수주인으로서 그의 모든 일상을 감시해야만 하는 촌장은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이홍위가 점점 신경 쓰이는데…
※ 본 감상평은 작품의 해석을 포함하고 있어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관람 전 독자분들께서는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늘 감사합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2024년 이후 약 2년 만에 탄생한 천만 영화다. 영화적인 연출과 서사를 둘러싼 평가는 엇갈리지만, 천만이라는 성과는 이 영화가 관객을 사로잡는 힘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관객들이 다시 한번 한국 영화에 관심을 돌리게 만드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따라서 작품을 통해 간단한 미장센과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광천골 청령포로 유배길에 오른 이홍위. 촌장 엄흥도의 말처럼 그의 유배길마저 순탄치 않았다. 이홍위를 태운 가마는 뗏목 위에 실려 강을 건너지만, 이내 돌부리에 걸리며 뗏목이 부서지고 만다. 이때 물에 빠진 이홍위의 행동이 인상적이다. 10대에 불과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강가에 몸을 일으켜 선다. 젖은 옷과 처연한 모습은 그의 심정을 대변한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이홍위는 그리 무기력한 인물이 아니었다고 전한다. 감독은 이러한 성격을 반영해 이 장면을 연출한 듯하다. 유배당한 처량한 상황에도 자신의 힘으로 꿋꿋하게 견뎌내는 해당 장면은 이후 전개될 서사의 방향성과 주제 의식을 전달한다.
1. 이홍위와 한명회
두 인물의 대면 장면에서 한명회는 시종일관 프레임의 상단에 위치한다. 이러한 구도는 당시 조선을 휘어잡고 있던 한명회의 권력과 위세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영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프레임 속 시각적 무게감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프레임의 위쪽에 배치된 피사체는 아래쪽에 놓인 대상보다 더 큰 무게와 존재감을 지닌 것처럼 인식된다. 상단을 차지한 대상은 자연스럽게 아래를 압박하는 인상을 만들며, 때로는 불안정하거나 위태로운 긴장감까지 형성한다. 또한 때로는 인물이 그것을 올려다보도록 배치해 압도적인 힘을 느끼도록 강조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두 인물의 높이를 다르게 담은 연출은 왕권의 실세였던 한명회의 권력적 위상을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반면 사랑채 안에서 여유롭게 자리를 지키는 한명회와 달리, 바깥에서 닫힌 창틀 너머로 말을 건네는 이홍위의 위치는 그의 권력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2. 이홍위와 엄흥도
그렇다면 같은 방식으로 이홍위와 엄흥도, 두 인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영화의 포스터에서 암시되듯 작품 속에서도 두 인물은 대체로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나아가 각 인물이 프레임을 차지하는 비율 또한 같다. 따라서 인물이 만들어낸 대칭적 구도로 안정감과 동등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구도는 영화 후반부, 서로의 관계가 확인되는 결정적인 장면에서도 반복된다. 이는 두 인물이 단순한 군신 관계를 넘어 인간적인 유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출이다.
작품 속에서 ‘끈’은 서사의 결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연출 장치이자 상징으로 기능한다. 처음 엄흥도는 이홍위를 유배지로 데려오기 위해 동아줄로 그를 이끈다. 이때 끈은 두 인물의 인연이 시작되는 계기이자, 동시에 유배라는 비극적 운명으로 인물을 끌어들이는 도구로 작용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끈은 질기고 단단한 매듭처럼 두 사람 사이에 맺어진 깊은 유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줄을 이용해 두 사람의 인연을 정리하며 이홍위를 평온한 강가로 이끄는 마지막 도구로 기능한다. 따라서 엄흥도라는 인물은 처음으로 이홍위의 삶을 함께 동행하는 동반자이자 뱃사공처럼 보인다. 이처럼 '끈'이라는 요소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인연을 표현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작품 속에서 이홍위는 모든 일들을 자신의 탓으로 여긴다. 스스로를 나약하다고 말하며, 상실을 품은 채 간신히 삶을 이어간다.
"더 이상 나로 인해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 (이홍위)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는 삶을 아는가?" (이홍위)
그의 말에는 깊은 죄책감과 체념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올곧고 단단한 내면이 자리한다. 바로 그 내면이 타인을 헤아리게 하고, 동시에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영화 내내 이홍위의 모습을 마주하다 보면, 때로는 차갑고, 암울하고, 보다 더 현실적인 미래를 직면한 청춘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끝없는 두려움과 상실을 짊어질 그들에게 문득 엄흥도의 말 한마디가 떠오른다.
나으리는 안 나약하고 안 어리석습니다.
(엄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