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처음에는 분명 신호가 있었다.
다만, 그 신호를
내가 애써 무시했을 뿐이다.
신용카드 한도가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번 달에 좀 썼나 보다.”
두 번째 카드가 한도에 가까워졌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달에 많이 팔면 되지.”
문제는,
그 ‘다음 달’이
항상 존재한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매출은 여전히 좋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내 말을 믿었고,
계약서는 여전히 채워졌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지금의 소비를 정당화했다.
“이 정도는 투자야.”
“사람 만나려면 어쩔 수 없어.”
“잘 나가는 사람은 이 정도는 써.”
내가 가장 자주 했던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통장은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 되었다.
돈이 들어오면
잠시 머물렀다가
곧바로 카드값으로 사라졌다.
이상한 건,
그럼에도 불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내 손에는 카드가 있었고,
카드는 언제든
나를 구해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처음으로 한 장의 카드가
한도 초과라는 문구를 띄웠다.
그날도 나는 웃었다.
“아, 이건 좀 심했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다른 카드로 결제했다.
그게
돌려 막기라는 걸
그때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리볼빙,
단기 카드대출,
현금 서비스.
이 단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내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그때의 나는
이걸 ‘위기 대응 능력’이라고 불렀다.
내가 똑똑해서
금융을 잘 활용한다고 믿었다.
문제는
이 모든 게
혼자만의 계산이었다는 점이다.
어느 날,
카드 두 장이 동시에 막혔다.
문자 알림이 연달아 울렸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카드가 남아 있었고,
아직 팔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계산보다 빨리 온다.
결국
다섯 장의 카드가
모두 연체되었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남은 숫자는
딱 하나였다.
5천만 원.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숫자.
그 숫자가
이제는 숨을 막히게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돈을 잘 버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날,
나는 처음으로
부자의 삶이 아니라
파산의 문 앞에 서 있었다.
한숨과 함께 따라 나온 말
"아, 나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