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그 달은 이상할 정도로 모든 게 잘 풀렸다.
전화하면 약속이 잡혔고,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였고,
권하면 계약서에 사인이 이어졌다.
나는 매장에 서 있는 시간이 점점 즐거워졌다.
누군가 나를 찾고,
누군가 내 말을 기다리고,
누군가 내 선택을 믿고 따랐다.
그 감각은 중독적이었다.
수습이라는 단어는
이미 내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나는 점장님 옆에서
판매 전략을 듣고,
고객 동선을 배우고,
매출표를 함께 들여다봤다.
“왜 이 사람은 여기서 망설일까?”
“이 타이밍엔 밀어붙여도 돼.”
“여기서 멈추면 계약 날아가.”
그 말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의 지도처럼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점장님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번 달 신입 중에
네가 제일 잘 팔았어.”
회사에서 작은 시상식 같은 게 열렸다.
‘신입 판매왕’
별것 아닌 종이 한 장과 격려금 그리고
형식적인 박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 나는 이쪽 사람이구나.
그날 이후
나를 대하는 매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후배들은 노하우를 물었고,
선배들은 나를 동등하게 대했다.
나는 점점 더 빨리 배웠고,
더 빨리 움직였고,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굳이 참을 필요 없지 않나?”
월급이 들어오면
통장은 오래 비어 있지 않았다.
차를 샀고,
옷을 샀고,
사람들을 불러냈다.
“오늘은 내가 살게.”
그 말이
내 입에 자연스럽게 붙어버렸다.
돈을 쓰는 순간에도
불안은 없었다.
내일도 팔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날,
돈으로 인기를 샀던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이번에는 더 크고,
더 강력하게.
후배들 앞에서는
성공담을 늘어놓았고,
어디를 가든
어깨는 자연스럽게 펴졌다.
나는 실패라는 단어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성공했을 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잘 되고 있을 때라는 걸.
신용카드 한 장이 늘었고,
두 장이 늘었고,
어느새 다섯 장이 되었다.
한도는 넉넉했고,
결제는 쉬웠다.
“할부로 하면 괜찮겠지.”
“다음 달에 메우면 되잖아.”
그게 시작이었다.
아직은 괜찮았다.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
아직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였다.
하지만 위험은
언제나 조용히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