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넘지 말아야 할 선

칸트철학으로 보는 현대인 스트레스 줄이는 방법

by 장재덕

의무와 한계로 자신을 지키는 삶


임마누엘 칸트

선을 기분이나 상황에 맡기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흔들리는 이유를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사람은
그때그때의 감정과 이익에 따라 판단을 바꾼다.

지금은 괜찮아 보이고,
지금은 예외처럼 느껴지고,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기준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선은 더 이상 선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밀리는 선이 된다.


그래서 칸트는 선을 먼저 긋는다.

그가 그은 선은
얼마나 좋은 결과를 낳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행동이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허용될 수 있는가를 묻는 선이다.


“네 행위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 도덕형이상학 정초


이 질문 앞에 많은 행동이 멈춘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기로 선택하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해도 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칸트의 선은
동양 사상가들의 선과 분명히 다른 방향에 서 있다.

공자는 마음을 바로 세워 선을 보게 했고,

노자는 힘을 빼야 선을 넘지 않는다고 보았다.

장자는 그 선을 상황에 따라
넘나들 수 있다고 여겼다.


반면 칸트는 그 이전에
절대 넘지 말아야 할 한계를 먼저 세운다.

이 한계는 유연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단단함 때문에
삶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칸트에게 선은
무언가를 더 하게 만드는 기준이 아니다.

지금 멈추게 하는 기준이다.

나를 옭아매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경계선이다.


이 선이 없으면 사람은 언제든
핑계를 만들 수 있다.

상황을 이유로 들고,
선의를 앞세우고, 결과를 명분 삼아
선을 넘어버린다.


칸트는 이런 넘어섬이 반복될수록
사람은 스스로를 잃는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의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의무는 짐이 아니다.
억지로 짊어지는 부담도 아니다.

의무란 넘지 않아도 될 선을

미리 그어 두는 일이다.


이 선 안에 있을 때
사람은 오히려 자유롭다.

칸트에게 자유는
아무렇게나 선택하는 상태가 아니다.

스스로 세운 한계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힘이다.


“자유란 욕망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법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다.”
— 실천이성비판


그래서 그의 선은 차갑게 느껴질 수 있다.

따뜻한 위로나

상황에 대한 이해를 앞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그 차가움 덕분에
삶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관계는 쉽게 침범되지 않으며,
자기 자신도 소진되지 않는다.


칸트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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