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 기존의 선을 의심하는 용기

니체철학으로 보는 현대인 스트레스 줄이는 방법

by 장재덕

남이 만든 기준을 넘어서는 삶


프리드리히 니체

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먼저 묻는다.


이 기준은 정말 나의 것인가.

사람들은 흔히 옳다고 배운 대로 살고,
맞다고 들은 기준을 따른다.


그 기준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는 묻지 않은 채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은 지친다.


하지만 그 이유를 일이 많아서도,
의지가 약해서도 아닌 다른 곳에서는 찾지 못한다.


니체는 그 이유를 선 그 자체보다
그 선을 만든 힘에서 찾았다.

많은 선은 삶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을 관리하고 순응하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도덕이란 강한 자를 약하게 만들기 위해
발명된 가장 정교한 기술이다.” — 선악의 저편


그래서 니체는 선을 지키기 전에
먼저 그 선을 의심하라고 말한다.

지금 내가 따르고 있는 기준이 나를 살리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줄이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 의심은 무너뜨리기 위한 반항이 아니다.
모든 것을 부정하기 위한 파괴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 삶에 맞는 선을
다시 세우기 위한 과정에 가깝다.


니체가 말한 넘어섬은
아무 선도 필요 없다는 선언이 아니다.

남이 정해준 선을 그대로 살지 않겠다는

결단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선이 사라진다.

굳이 참지 않아도 될 것들,
이미 의미를 잃은 도덕, 습관처럼 따라온 기준들.

그 선들이 무너질 때 삶은 잠시 불안해진다.


“기존의 가치를 파괴할 용기를 가진 자만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 불안은 공허가 아니라 여백에 가깝다.

그 자리에 자기 삶의 감각이 들어선다.

지금의 나에게 어떤 선이 필요한지,
어디까지가 나의 몫인지,
어디서부터는 더 이상 따르지 않아도 되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니체에게 자유는

모든 것을 허용하는 상태가 아니다.

자기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자리다.


그래서 그의 선은 불편할 수 있다.

기댈 기준이 사라지고, 남의 판단 뒤에
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덕분에
삶은 비로소 자기 것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선은 지키라고 주어진 선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한 선이다.

그 선택이 있을 때 삶은 더 이상
남의 기준을 사는 삶이 아니다.

니체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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