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조언에 따른 선을 넘지 않는 삶"
그날의 피로는
일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사람을 많이 만나서도 아니었다.
거절하지 못한 말 하나가 하루를 길게 만들었다.
부탁은 과하지 않았다.
상대도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사실은
조금 부담이 되었고
지금이 아니어도 되었지만 그 말을 삼켰다.
거절하는 순간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나만 빠져 보일까 봐
그냥 받아들였다.
그 선택은 그때는 무난해 보였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나니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 있었다.
피로는 일의 양에서 오지 않았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생겼다.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하고 싶은가”보다 “해도 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네 행위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내가 지금 하려는 이 말과 행동이
누구에게나
같은 상황에서 적용되어도 괜찮은가.
모두가 이렇게 해도 세상이 유지될 수 있는가.
그 질문을 한 번 더 거치라는 뜻이다.
그 말은 냉정해지라는 명령이 아니다.
감정을 없애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순간의 욕구가 아니라,
스스로 세운 기준 앞에서
한 번 멈춰 서 보라는 요청이다.
그 한 번의 질문이
충동을 줄이고, 후회를 줄이고,
하루의 불필요한 소란을 줄인다.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묻는 질문이다.
그날의 나는 그 질문을 건너뛰었다.
가능했기 때문에 부탁이었기 때문에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과
해도 되는 것은 같지 않았다.
거절하지 못한 선택은
당장은 부드럽지만 뒤늦게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 무너진 경계는
피로라는 형태로 돌아온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잠시 멈춘다.
이 부탁은 지금 해도 되는 일인지
아니면 지금은 지나쳐야 할 선인지.
거절했다고 해서 사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준이 보였다는 안도감이 남았다.
오늘의 피로는 얼마나 많이 했느냐보다
얼마나 정확히 거절했느냐에 더 가깝다.
오늘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지 않았는지 하루를 돌아본다.
거절은 관계를 깨는 말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말일 수도 있다.
칸트의 말과 사상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선을 넘지 않는 삶 1」**에서
따로 정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