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인간] 나는 조선의 행복한 메모광이다!

13화 이덕무

by 초로의 궁사

자신의 운명을 깨닫게 된다는 쉰.
하지만 막상 그 나이에 이르러 보면 운명은 커녕, 어제와는 다른 몸의 신호와 인생이 완만한 내리막에 접어들었다는 감각이 먼저 찾아온다. 자식은 품을 떠날 준비를 하고, 사회 속에서의 내 자리는 조금씩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허전한 마음의 빈터를 우리는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조선 최고의 메모광이자 평생 가난했던 선비 이덕무(李德懋)는 그 답을 ‘사소한 것들의 위대함’에서 찾았다. 쉰의 문턱에 선 당신에게, 그가 남긴 보석 같은 문장들을 전해본다.

“눈앞의 작은 기쁨을 놓치지 마라”

이덕무는 《선귤당농소》에서 이렇게 적었다.

“추운 겨울날 햇볕 드는 창가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해묵은 책을 뒤적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사람들은 멀리서 행복을 찾으나, 나는 내 방 안의 햇볕에서 천하를 얻는다.”​

쉰이 되면 우리는 자꾸 ‘내가 이룬 것’의 총량을 계산한다. 그러나 이덕무는 말한다. 행복의 단위는 성취가 아니라 감각이라고...

지천명의 지혜란 대단한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지 않다. 오늘 아침 마신 물의 시원함, 창가에 스민 오후의 햇살을 온전히 누리는 작은 몰입에 있다. 삶의 주권을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감각으로 되찾는 연습이 필요한 때다.

“낡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다워지는 것이다”

이덕무는 스스로를 ‘看書痴(간서치, 책바보)’라 불렀다.
하지만 그가 진정 사랑한 것은 책이 아니라, 책을 읽는 자기 자신이 머무는 고요함이었다. 그는 신분의 벽과 가난 속에서도 이렇게 기록했다.

“남들이 나를 비웃어도 나는 나일 뿐이다. 나는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나의 귀로 소리를 들으며, 나의 입으로 나의 진실을 말하리라.”
― 《이목구심서》​

쉰은 타인의 시선에서 독립해야 하는 나이다.
젊은 날 우리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베스트셀러 같은 삶’을 살고자 애썼다면, 이제는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나만은 끝까지 읽고 싶은 단 한 권의 유고집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낡으면 낡은 대로...
그 모든 것이 곧 ‘나’라는 고유한 문체가 된다.


“기록은 무너지는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이덕무는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적었다.
그에게 메모는 정보의 저장이 아니라, 흘러가는 자신을 붙잡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오늘의 나는 내일 잊히고 만다. 한 줄의 글을 적는 것은 나의 영혼에 주춧돌을 놓는 일이다.”​

지천명을 넘어서면 기억은 흐려지고, 시간의 속도는 갑자기 빨라진다.
이때 우리를 붙드는 것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매일의 짧은 기록이다.
오늘 먹은 음식, 길에서 마주친 고양이의 눈빛, 문득 스친 그리움 한 조각...
이런 것들을 적어 내려갈 때 쉰의 삶은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깊이 있는 축적으로 바뀔 것이다.

당신이라는 문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덕무는 화려한 관직에 오르지 못했지만, 수만 장의 메모 덕분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있다.
쉰의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오늘은 어떤 문장으로 남겨질까.

이제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아도 좋다. 대신 이덕무처럼 허리를 펴고 앉아, 지금 곁에 있는 것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지천명이란 하늘의 뜻을 억지로 깨닫는 나이가 아니라, 사소한 것들 속에 숨어 있던 하늘의 뜻을 발견하고 미소 짓는 나이다.

오늘, 그대의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보길...


“오늘 나의 공기는 참으로 맑고, 나의 차 한 잔은 더없이 따뜻하다.”

이덕무의 죽음에 애통한 정조는 그의 기록을 모아 집대성한 저술에 서문을 직접 쓰고 국비를 지원해 [청장관전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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