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인간] 명아주 불빛 아래서 30년

26화 이긍익

by 초로의 궁사

한 학자가 밤을 새워 어두운 방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 노인이 나타나 지팡이 끝에 불을 붙여 방 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그 지팡이는 명아주로 만든 여장(藜杖) 이었다.

중국 고사에 따르면 그 노인은 하늘에서 내려온 태을성(太乙星), 곧 학문을 관장하는 별의 화신이었다. 그 빛 아래에서 학자는 비로소 깊은 학문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한 학자는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의 작은 서재 이름을 ‘연려(燃藜)’, 즉 ‘명아주를 태운다’는 뜻으로 지었다. 그리고 그 방에서 30년의 세월을 보내며 조선 역사를 정리했다.

그가 바로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 그리고 그가 남긴 책이 바로 《연려실기술》(燃黎室記述)이다.

《연려실기술》의 의의

《연려실기술》은 조선 후기 역사학의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본집 : 태조부터 현종까지의 역사
속집 : 숙종 대의 역사
별집 : 제도·지리·문예·전례 등 분야별 정리
이긍익은 당시 전해지던 400여 종의 야사, 일기, 문집을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그의 편찬 원칙은 명확했다.
술이부작(述而不作)​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지 않고 기존 기록을 그대로 옮기되, 출처를 분명히 밝혔다.
다수설 채택​
같은 사건이라도 기록이 다를 경우 여러 문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내용을 우선했다.
당파성 배제​
남인·서인·북인 등 서로 다른 당파의 기록을 함께 제시하여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서술 방식이다.
기존의 역사서가 연도별로 사건을 기록하는 편년체였다면, 《연려실기술》은 사건의 시작과 끝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기사본말체 (紀事本末體)를 적극 활용했다. 덕분에 독자는 여러 연도를 넘겨가며 기록을 찾을 필요 없이 하나의 장에서 사건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다.

《연려실기술》의 꽃, 별집​

이 책의 백미는 단연 〈별집〉이다. 여기에는 정치사뿐 아니라 조선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가 정리되어 있다.
과거/관직 체계/외교관례/지리 천문/문예와 풍속
어떤 주제가 궁금하든 이긍익이 분류해 놓은 사료 더미를 뒤지다 보면 답이 나온다. 그래서 학자들 사이에서는 종종 이 책을 ‘조선 시대의 구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의 아픈 속사정


그가 이처럼 당파를 떠난 객관적인 시선을 고집했던 이유는 그의 가족사에 있었다. 소론 명문가였던 그의 집안은 나주 괘서 사건에 연루되면서 몰락했다. 아버지는 무려 23년 동안 유배지에서 세월을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 그 결과 이긍익과 그의 형제들에게는 관직의 길이 사실상 막혀 버렸다.

어린 시절 그는 당파 싸움이 한 가문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특정 당파의 시각으로 쓰인 역사서들에 깊은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정치가 아니라 사실(Fact) 로 역사를 기록하겠다고.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보다 가능한 한 많은 기록을 모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학자로서의 복수​

《연려실기술》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다. 그것은 가문을 무너뜨린 당쟁의 실체를 기록한 작업이면서 동시에, 그 증오를 넘어 객관적인 역사로 승화하려는 학자의 결심이었다.

증오에 매몰되지 않고 가장 객관적인 눈으로 조선을 기록하겠다.

이긍익은 그렇게 명아주 불빛 아래에서 평생의 작업을 완성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조선시대를 정사인 《조선왕조실록》과 야사적 성격의 《연려실기술》이라는 두 개의 렌즈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두 렌즈가 겹쳐질 때, 비로소 조선이라는 시대의 입체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유배 중인 아버지의 연좌로 과거길에 나가지 못한 이긍익은 42살에 시작한 연려실기술을 30년에 걸쳐 그의 아버지의 말년 유배지인 신지도에서 편찬하였다. 이긍익은 당대 문장가이자 명필이었던 원교 이광사(25화 참조)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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