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계리사의 계산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출근길부터 시작된다.
회사까지는 버스 또는 지하철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또는’이라는 단어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하철은 배차가 촘촘해 대기 시간이 안정적이다.
대신 지하철역이 집에서 멀어 걷는 시간이 길다.
간혹 낮은 확률로 각종 시위 및 파업으로 인해
지하철 대기 시간이 무한정 길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버스는 도보 시간이 짧지만, 배차 간격이 길고
교통 상황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안정수냐 도박수냐, 계리사에게는 아주 익숙한 기댓값 계산 문제다.
휴대폰으로 버스 배차 시간을 확인해 본다.
다음 차량 도착까지 13분. 오늘은 지하철을 타는 편이 낫겠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습관처럼 가장 빠른 환승 위치를 확인한다.
6-4번 게이트를 활용하면 가장 빠르게 회사 근처의 지하철역 출구에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6-4번 게이트로 승차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이 게이트가 최단 환승 위치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므로 통상 매우 붐빈다.
내가 합리적인 만큼 다른 사람들도 합리적일 거라고 가정한다,
게임이론에서 늘 하던 생각이다.
합리적인 선택은 때로는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쪽에 있다.
우선 덜 붐비는 아무 열차 칸으로 승차하여 시간을 절약한다.
그 후 사람이 많이 타고 내리는 역에서 함께 내렸다가 게이트를 옮기며 재탑승한다.
통근길 지하철 인파는 매우 붐벼 강제적으로 후입선출의 원칙이 성립하므로,
재탑승을 거쳐 6-4번 게이트에 가장 늦게 탄 내가 결과적으로 가장 먼저 내린다.
지하철을 내린 후 횡단보도를 기다리며 계산은 다시 시작된다.
회사는 사거리 횡단보도의 반대편에 있어 가로로 한번, 세로로 한번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가로방향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켜진다. 건너면 될까?
오답이다. 지금 건너면 오히려 손해다.
이 사거리는 늘 같은 순서로 신호가 돈다.
지금 잠시 신호를 기다렸다가 세로 방향 횡단보도를 먼저 건너면
바로 다음 가로 방향 신호를 받아 빠르게 건널 수 있다.
신호의 순서를 모르는 사거리라면 어떨까?
답은 횡단보도에서 대기하는 사람의 수를 관찰하면 된다.
횡단보도 양쪽에 기다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 직전에 신호가 켜졌다는 뜻이며
다음 신호가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반면 대기 인원이 많다면 이 신호는 곧 켜질 것이므로,
그에 맞는 최적의 동선을 짜면 된다.
문득 나는 아직도 문제를 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만 그 문제의 크기가 출근 시간을 몇 분 앞당기는 정도로 줄어들었을 뿐이다.
한때는 이 감각이 세상을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신호 하나를 덜 기다리게 해줄 뿐이다.
이 사고방식이 여전히 나를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내가 여전히 계산이 빠른 사람이라는 증거이자
그래서 더 쉽게 우울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계산을 끝내고 나면 회사 건물이 보인다.
수천억의 매출을 다루기 위해 뽑힌 내가,
500원의 교통비와 3분의 지연을 계산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과거의 영재가 최고의 회사원이 되어 신의 직장에 다니게 된 이야기다.
적어도 그렇게 불리는 곳에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