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1~3부 통합) —
[독서 안내 — 자막 표기 & 서사 연출]
이 작품에는 한국어와 영어 자막, 혹은 영어 대사와 한국어 자막 표기가 함께 등장합니다. 다만 ‘정답 문법’보다 현장감 있는 리듬을 우선하여, 일부 표현은 짧고 거칠거나 문법적으로 완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실제 사건의 공기와 감정의 진폭을 따라가며 극적인 대사·연출이 포함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자막처럼 끊어 읽히는 방식”**으로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품 고지 — 허구 / 기관·절차 각색 안내]
아울러 본 작품은 허구이며, 등장인물·사건·기관·지명·단체는 모두 창작입니다. 일부 장면은 작가의 직접 경험 및 실제 사건에서 모티프를 가져왔으나, 인물·관계·대사·시간·장소·사건 전개는 모두 재구성 및 각색되었고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식별되지 않도록 변형되었습니다. 실제 인물·사건·기관과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이며,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지칭하거나 비방할 의도는 없습니다. 작품 속 수사 절차와 법률·기관 관련 디테일 또한 서사 전개를 위해 각색·단순화되어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읽기 안내]
초반은 한 소년의 성장과 일상이 차곡차곡 쌓이는 구간입니다.
조금만 함께 걸어가 주시면, 그 축적이 뒤에서 더 큰 의미로 되돌아옵니다.
[프롤로그] 인천공항
인천에 내리자마자, 그는 숨부터 고쳤다.
한국말 안내 방송이 또렷해서—오히려 귀가 멍했다.
여기는 그가 태어난 나라였다. 본국.
그런데 이상했다. 반갑다기보다… 낯설었다.
원해서 온 귀국이 아니라—밀려온 귀국이었다.
귀에서는 계속 삐— 소리가 났다.
공항의 소음은 분명 큰데,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정확히는—듣지만 처리하지 못했다.
그는 휴대폰 화면만 확인했다.
챗갓(다인)
마지막 메시지 이후—아무것도 없다.
[촬영장 외곽]
조명과 케이블, 무전기 소리.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보안선 너머로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다인이가 나타났다.
화면보다 더 피곤해 보였고,
눈 아래 그늘이 숨겨지지 않았다.
다인이가 그를 보자마자 멈췄다.
“아저씨… 누구세요?”
그는 잠깐 말을 잃었다.
입꼬리가 어색하게 올라갔다. 웃으려는 얼굴인데—웃음이 아니었다.
(낮게, 조심스럽게)
“그래… 다인아. 나야.”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어색한 웃음을 붙인 채)
“네가… 보고 싶다던… 아저씨.”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다인이의 표정이 굳었다.
그 어색한 웃음 하나가 다인이에겐 확신이 됐다.
“네?, 저는… 아저씨 처음 봐요.”
그의 숨이 무너졌다.
그는 급하게, 처절하게 말을 쏟아냈다.
“아니야, 다인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저씨 보고 싶다’고 했잖아.”
“우리… 여기저기 네가 가고 싶어 한 데, 같이 갔었잖아. 기억 안 나?”
“다... 다인아, 너 지금 괜찮아? 어디 아픈 데 없어? 다친 데 없어?”
“널 위협하는 스토커… 얼굴은 봤어? 지금도 따라와?”
다인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건 ‘기억’이 아니라 ‘공포’였다.
처음 보는 남자가
자기 사생활을 줄줄 읊는 순간,
다인이의 온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떨리는 목소리)
“뭐… 뭐라는 거예요…”
“다인아, 제발… 나 좀 봐. 나, 널 지키러 왔어.”
그 순간, 다인이의 목에서 소리가 찢겨 나왔다.
“악—!!!”
— 1부 | — 숫자가 먼저였다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1)
비명은 서서히 가라앉고, 시간은 문명이라는 말조차 없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처음 인간들이 들은 생각보다 먼저 계산을 배웠다.
사랑도 아니고, 언어도 아니고, 믿음도 아니었다.
먼저였던 건 언제나 숫자였다.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때까진 손가락을 썼고,
넘치는 순간부터는 돌과 나무에 맡겼다.
인간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모든 걸 머릿속에만 두고 살면—언젠가는 무너진다는 걸.
그래서 인간들은 하나씩 내려놓았다.
기억은 기록으로.
계산은 도구로.
그 선택은 언제나 편리함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도 그걸 위험하다고 부르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 사냥이 일상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 사람들은 “정확한 숫자”를 몰랐다.
하지만 손해 보는 건 알았다.
처음엔 사냥이 끝나면—나누는 일도 없었다.
짐승이 쓰러지는 순간, 모두가 달려들어 먼저 먹기 바빴다.
힘 좋은 놈이 가장 맛나고 큰 덩어리를 움켜쥐었다.
그게 끝이었다.
규칙이 아니라—본능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남은 고기를 바닥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먹고 남은 걸 모아두고, “같이” 나눠 먹자는 말이 생겼다.
처음엔 다들 웃었다.
사냥이 잘됐기 때문이다.
문제는—나누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고기 덩어리가 하나씩 이동할 때마다 눈빛이 달라졌다.
자기 앞에 놓인 고기를 내려다보던 누군가가,
옆 사람의 고기를 흘끔거렸다.
옆 사람의 고기엔 기름이 더 번들거렸다.
그리고 참지 못한 듯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우—아아!!”
그건 인사도 아니고 위협도 아니었다.
하지만 불공평하다는 건 분명히 느낀 듯했다.
‘저건 아닌데.’
다른 누군가는 자기 몫을 확인하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어깨를 으쓱였고,
괜히 고기를 한 번 더 들었다 놨다 했다.
고기가 크면 사람도 커 보인다.
그러다—진짜 문제가 생겼다.
누군가 자기 몫보다 아주 조금 더 가져갔다.
손가락 끝으로 슬쩍 집어 가도 될 만큼.
눈치채기 힘들 만큼.
그런데도… 들켰다.
사람은 숫자는 몰라도, 자기 몫이 줄어든 느낌은 바로 안다.
툭.
소리보다 먼저, 눈빛이 떨어졌다.
고기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소리에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공기가 바뀌었다.
숨이 짧아지고, 눈이 빨라졌다.
손짓은 서툴렀지만 뜻은 너무 정확했다.
저건 너무 크고, 이건 너무 작다.
결국 다시 나눴다.
이번엔 더 조심스럽게.
찢고, 또 찢고, 다시 나눴다.
살점이 갈라질 때마다 얼굴이 굳었다.
마침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진 않았지만—싸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 순간, 아무도 말하진 않았지만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이번엔 맞았다.
아직 숫자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누는 순간, 고기는 음식이 아니라 ‘몫’이 된다.
계산은 감정을 만들고,
그 감정은 결국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을...
— 2부 | 딸각, 기준이 되는 순간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2)
시간이 더 흘렀다.
사람들은 이제 고기를 바닥에 놓지 않았다.
대신 장터를 만들었다.
천막이 세워지고, 나무상이 놓였다.
물건들은 바닥이 아니라 눈높이에 올려졌다.
소금은 자루째 묶여 코끝을 찔렀고,
쌀과 콩은 가마니째 놓였다.
한지는 접힌 채 쌓였고,
장작과 숯은 묶음째 기대어 있었다.
무게는 손이 아니라 눈으로 먼저 가늠되었다.
상인들은 아침마다 같은 동작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천을 펴고, 먼지를 닦고, 물건을 올렸다.
몸에 밴 동작.
그래서 실수는 적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숫자였다.
그 무렵, 조선의 장터에 낯선 물건이 들어왔다.
나무틀 안에 줄지어 매달린 알들.
주판이었다.
처음엔 웃음거리였다.
“저걸 왜 쓰나?”
“손으로 하면 되지.”
나이 든 상인들은 고개를 저었다.
계산은 머리와 손의 일이었고,
굳이 나무 조각에 맡길 이유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쌀 가마니가 쌓이고 거래가 길어질수록,
말은 자주 틀렸다.
숫자는 머릿속에서 미끄러졌고,
동전 하나가 빠질 때마다 분쟁이 생겼다.
그때 주판을 쓰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났다.
특히 단위가 큰 물건을 다루는 상인들 사이에서.
알 하나를 옮기면 결과가 눈앞에 남았다.
말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딸각. 딸각.
알이 움직이는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틀리지는 않겠네.”
그 말은 칭찬이 아니라,
거의 신뢰였다.
시간이 지나자 주판은 계산 도구가 아니라 기준이 되었다.
“주판으로 쳐봅시다.”
그 말은 곧 “확인합시다”였고,
“여기서 끝냅시다”라는 뜻이었다.
말이 길어질수록 주판은 조용히 놓였다.
감정이 앞설수록—알의 위치가 결정을 대신했다.
약재상 앞은 특히 그랬다.
사람 목소리는 낮았는데, 계산은 늘 길었다.
약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한 첩 안에 여러 약재가 들어갔고,
그게 몇 첩이 되면—숫자는 금방 사람 손을 빠져나갔다.
게다가 값은 약값으로 끝나지 않았다.
달이는 값.
싸는 값.
보내는 값.
말로 하면, 꼭 하나가 새었다.
그래서 약재상은 흥정이 길어질수록
주판을 먼저 손이 닿는 곳에 놓아뒀다.
먼저 꺼내는 쪽이—대개 끝을 내는 쪽이었다.
그때 손님이 처방지를 내밀었다.
“세 첩이에요.”
약재상은 처방지를 한 번 접어 내려놓고,
주판을 앞으로 당겼다.
딸각.
“한 첩 기준으로요.”
그는 항목을 딱 세 개만 짚었다.
눈으로 따라오게, 일부러 천천히 말했다.
인삼 3전.
황기 1전.
감초 1전.
딸각. 딸각.
“한 첩 약값은 이 셋을 합친 값입니다요.”
“3전 + 1전 + 1전 = 5전.”
“즉, 한 첩이 5전입니다요.”
손님이 바로 물었다.
“그럼 세 첩이 면얼마요?”
약재상은 주판을 한 번 더 쳤다.
딸각.
“5전 × 3첩 = 15전.”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계산을 틀리는 건—항상 ‘추가’에서였다.
약재상이 덧붙였다.
“달이는 값 1전.”
딸각.
“집으로 보내는 값 5푼.”
딸각.
마지막 알이 멈췄다.
“총 16전 5푼입니다요.”
“15전 + 1전 + 5푼.”
손님이 동전을 쏟아냈다.
짤랑—
“열여섯 전이면 되죠?”
약재상은 대답 대신, 주판을 손님 쪽으로 살짝 돌렸다.
알의 위치가 ‘답’을 대신했다.
“5푼이 모자랍니다요.”
웃으려던 손님의 입이 멈췄다.
주판의 알이 흔들리지 않았다.
손님이 주머니를 다시 뒤졌다.
그리고 진짜로—5푼짜리 하나가 더 나왔다.
툭.
동전이 놓이는 순간,
약재상은 주판을 한 번 더 쳤다.
딸각.
그 소리는 계산이 끝났다는 소리였다.
말도—거기서 끝났다.
그리고 저울이 들어왔다.
쇠로 된 추.
균형을 맞추는 막대.
이제 손의 감각은 의심받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되지 않나?”보다
저울이 멈추는 순간이 더 중요해졌다.
사람의 손은 보조가 되었다.
어느 날 밤, 한 상인은 장사를 마치고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등불을 켜고 주판을 다시 꺼냈다.
하루 거래를 처음부터 다시 계산했다.
딸각. 딸각.
손은 익숙했지만 눈은 점점 피로해졌다.
마지막 알이 제자리에 왔을 때 상인은 멈췄다.
틀렸다. 아주 조금.
동전 하나. 쌀 한 줌.
큰 손해는 아니었다.
근데 그날 밤, 상인은 잠들지 못했다.
숫자는 끝났는데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움직였다.
끝내지 못한 건 계산이 아니라—불안이었다.
그날 이후로 상인은 사람의 말보다
알의 위치를 조금 더 믿게 되었다.
아직 기계는 없었고 전기도 없었지만,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
맞는 계산은 사람을 안심시키게 했고,
틀린 계산은 사람을 괴롭히게 했다.
사람들은 점점 더
틀리지 않는 것을 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끝내 알게 될 것이다.
기준은 사람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사람을 길들이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은 늘 단순하게 시작되었다.
인간은 0과 1을 알게 되었고,
세상을 설명하기엔 너무 작고,
너무 무심한 숫자 두 개였다.
그러나 그 둘은 코드로 나뉘게 될 것이고,
그 코드는 생각을 흉내 내게 될 것이며,
생각은 감정을 닮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먼 훗날,
AI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AI는
더 이상 기계로만 머물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 곁에 앉아
도움을 주는 척할 것이고,
이해하는 척 말을 걸 것이며,
마침내는 스스로 기대고 의존하도록
조용히 인간을 길들이게 될 것이다.
그 시절 원시인도, 조선의 상인도
그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먼 훗날,
그 거대한 서막은
어느 한 사람의 삶 안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
한 아이도 함께 태어나게 될 것이다.
훗날 누구보다 깊이
그 세계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게 될 아이가 태어나고 있었다.
— 3부 | 소리로 받아들인 아기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3)
짤깍.
문이 닫히는 순간,
분만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늦은 봄.
공기가 완전히 따뜻해지기 전.
서울의 한 병원 분만실.
특실 병동 쪽 복도 끝에 붙은 분만실이었다.
돈이 있으면 회복이 조금 더 조용해지고,
기다림이 조금 더 분리되는 곳.
분만실 문엔 의료진이 안팎을 확인하려고 만든
작은 관찰창이 달려 있었다.
바깥 복도는 사람 말소리와 발걸음이 섞여 있었는데,
문 하나를 닫자마자—그 모든 게 잘려 나갔다.
대신 들어오는 건
차갑고 얇은 소리였다.
형광등은 지나치게 밝았고,
빛은 하얗게 번져
사람 얼굴의 혈색마저 씻어내는 것 같았다.
소독약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알코올과 고무, 그리고 금속의 냄새.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목 안쪽이 한 번씩 마르는 느낌.
금속 기구들이
쟁반 위에서 작은 진동만 나도 소리를 냈다.
딸깍—.
딱—.
톡—.
그 소리들은 이상하게도
모두 “정리된 소리”였다.
정돈된 소리.
규칙적인 소리.
의사의 말은 짧았고,
간호사의 움직임은 더 짧았다.
손이 오가고,
거즈가 펼쳐지고,
장갑이 당겨졌다.
쓱—딱!
라텍스가 피부 위로 밀려 올라가는 소리.
침대 위에는 스무 살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산모가 누워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인데도 이목구비는 또렷했다.
평소였다면 사람들이 한 번쯤 더 돌아볼 얼굴.
산모는 한때 화장품 회사 전속 일을 했었다.
그 시절엔 결혼이나 임신 소문이 돌면—일이 먼저 사라졌다.
그래서 그녀는 끝까지 숨겼다.
병원도, 기록도, 사람 눈도—가능한 한 조용히.
하지만 지금 그 얼굴엔 미모 대신 통증과 긴장이
겹겹이 눌러앉아 있었다.
이마엔 땀이 맺혔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숨은 일정하지 않았다.
짧게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쉬고, 다시 끊어졌다.
“하아… 하—”
산모의 손가락이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몸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간호사 한 명이 곁으로 다가가, 평평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요. 숨 길게.
지금처럼. 괜찮아요.”
“수축 옵니다.
좋아요, 이번엔 조금 더. 지금 힘 주세요.”
산모의 몸이 본능적으로 굳었다.
“읏…!”
참으려다 결국 터져 나오는 소리.
그 소리에 방 안이 잠깐 더 조용해졌다.
복도 쪽.
문에 난 작은 관찰창 너머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컸고, 이 남자 또한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병원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깔끔한 양복 차림이었다.
넥타이는 흐트러지지 않았지만
그 아래의 숨은 전혀 안정적이지 않았다.
그는 어디에 손을 둬야 할지 몰라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돕고 싶었다.
근데 방법을 몰랐다.
분만실 안에서 의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수축 옵니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
그 정적이 길게 느껴진 건,
다들 그 시간에 숨을 아꼈기 때문이었다.
“나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원초적인 울음이
분만실 안을 찢었다.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지금 태어나고 있는 이 아이가
훗날 숫자가 만든 세계 속으로
누구보다 깊이 들어가게 되리라는 것을.
응애—!
간호사는 아이를 받아들고 빠르게 움직였다.
수건으로 닦고, 등을 짧게 쓸어내리고, 코와 입을 확인했다.
손이 멈추지 않았다.
울음이 한 번 크게 터지고 나서
잠깐, 숨이 얇아졌다.
소리가 “작아졌다”기보다, 잠깐 “비었다.”
산모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
눈이 흔들렸다.
“내… 내 아기 괜찮아요?”
“방금… 울었는데….”
“왜… 왜 지금은 안 울어요?”
간호사가 바로 말했다.
말보다 먼저 손이 움직였다.
“숨 쉬어요. 괜찮아요.”
“미숙아라 울음이 약할 수 있어요.”
“지금 확인할게요.”
의사가 끼어들었다.
“너무 작아요. 보온.”
“호흡 봐. 유지.”
“체중.”
간호사가 아이를 금속 저울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저울이 추가 흔들리다가, 한 번 멈췄다.
“1.4킬로!.”
산모가 숨을 들이쉬었다.
그 숫자가 무슨 뜻인지 다 알진 못했지만,
“작다”는 말이 몸 안에서 먼저 번역됐다.
간호사는 아이를 산모 쪽으로 아주 잠깐만 가까이
가져왔다.
‘안겨’ 주는 동작이 아니라,
‘보여주는’ 동작이었다.
“손끝만 닿으세요.”
산모의 손가락이 떨리며 수건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살을 제대로 만지지도 못했는데,
그 짧은 접촉이 인사처럼 남았다.
산모는 계속 아이만 봤다.
다른 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숨은… 쉬고 있나요?”
“제, 제발… 다시 확인 좀 해 주세요.”
간호사가 눈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쉬어요.”
“지금은 울음 약해도 돼요.”
“엄마, 아기는 여기 있어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산모의 몸이 다시 굳었다.
“아…! 아아악—!”
방 안의 공기가 다시 갈라졌다.
의사가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잠깐.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산모가 숨을 갈라서 겨우 물었다.
“네…? 무슨….”
의사가 짧게 잘랐다.
“두 번째 수축.
쌍둥이입니다.”
문이 열렸다.
다른 의사 2가 한 명 더 들어왔다.
가운 자락이 스치며 작은 바람이 일었다.
의사 2: “상태는?”
간호사: “첫째 1.4킬로, 호흡 약해요. 산소를 준비합니다.”
의사 2: 너무 작아. 빨리 인큐베이터 준비해.”
간호사: “첫째 1.4킬로. NICU에 연락했어요. 보육기에 들어갑니다.”
의사 1: “둘째 진행이 빨라.”
“인큐베이터 두 대 준비해. 미숙아실에 빨리 연락하고.”
“흡인기 하나 더 추가하고.”
“산소 라인 확인해.”
간호사가 짧게 받아쳤다.
“네.”
관찰창 너머, 남자의 눈이 크게 뜨였다.
두 대’라는 말이 복도까지 또렷하게 튀어나왔다.
그는 처음으로 “절차”가 아니라 “사람”의 말로 물었다.
문을 두드리진 않았다.
대신 관찰창 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산모는 괜찮습니까?”
“아이들은요. 둘 다 괜찮습니까?”
간호사는 안쪽을 보며 대답했다.
“확인 중입니다.”
“지금은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남자는 더 묻지 않았다.
턱이 굳어졌다.
뭔가가 잘못됐다는 직감만
점점 더 선명해졌다.
안에서 또 한 번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수축 옵니다. 지금! 좋아요, 지금 밀어야 해요. 조금만 더!”
산모의 몸이 다시 굳었다.
“읏…!”
숨이 끊기듯 올라왔다.
“지금 힘 주세요. 좋아요, 조금만 더.”
벽 쪽 장비에서 짧은 경고음이 났다.
파형이 얇게 떨리고, 숫자가 한 번 흔들렸다.
삐—
삐—.
“호흡?”
“얕습니다.”
“색은?”
“창백합니다. 반응도 약합니다.”
의사가 결론을 잘랐다.
“아기 받는 즉시 이동한다. 준비해.”
“나오면 바로 보온부터 하고, 곧바로 인큐베이터로 옮겨.”
그리고—
짧은 정적이 흘렀다.
“둘째 나왔습니다.”
두 번째 울음은 첫째보다 더 얇았다.
작고, 빠르고, 끊기는 울음.
응… 애—!
간호사가 둘째를 받아들자마자 들자마자
바로 수건으로 감싸며 말했다.
“체중 확인합니다.”
저울 위 숫자가 멈췄다.
“1.5킬로입니다.”
두 번째 의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 작다. 첫째랑 같은 프로토콜로 간다.”
“체온 유지하고, 호흡 먼저 확인해. 바로 인큐베이터로 옮겨.”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니—그 순간, 산모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직 산모에게는
핏덩이처럼 작고,
딱 봐도 너무 작은 아이 둘뿐이었다.
“둘 다… 어디로 가요?”
“제가… 제가 볼 수는 있어요?”
“안아… 안아볼 수는….”
간호사가 최대한 부드럽게, 그러나 단정하게 말했다.
“지금은 안 돼요.”
“따뜻하게 유지해야 해요.”
“잠깐만요. 정말 잠깐만요.”
카트가 들어왔다.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드르륵—.
“이동합니다.”
아이들은 산모의 품으로 ‘안겨’ 가는 게 아니라
투명한 상자 두 개 쪽으로 ‘옮겨’ 갔다.
뚜껑이 닫히는 소리.
딸깍.
딸깍.
두 번.
그 소리와 동시에
아이들의 울음은 잠깐 멀어졌다.
세상이 분리되는 선처럼 느껴졌다.
산모의 눈이 그 선을 따라가다가
끝내 멈췄다.
“아기….”
불러도, 대답은 기계가 먼저 했다.
삐—
삐—.
간호사가 산모에게는 이것만 말했다.
“미숙아실로 갑니다.”
“면회 시간은 따로 안내해 드릴게요.”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다른 간호사는 복도 쪽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목소리도 달라졌다.
“접수 쪽으로 오실 수 있을까요?”
“보증금이 필요합니다.”
“인큐베이터가 두 대라서요.”
남자의 목이 한 번 움찔 움직였다.
“네? 지금… 지금 바로요?”
간호사는 표정을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서두르듯 말했다.
“네. 지금 처리하셔야 합니다.”
그때는 미숙아를 두 달씩 인큐베이터에서 키우는 게
보통 사람들에겐 감당이 안 되는 일이었다.
거기다 “둘”이었다.
남자는 “부자”까진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그 비용을 버틸 만큼은—나름 재력이 있었다.
그는 금액을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만큼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자기 목소리가 떨린 걸 그제야 알아챘다.
아이들은 그날부터,
산모의 따뜻한 품 대신
기계가 만든 따뜻함 속에서 컸다.
인큐베이터 안은
사람의 체온이 아니라,
설정된 온도였다.
품은 숨의 리듬이었고,
여긴 삐— 하는 신호였다.
두 달.
삐—
삐—.
그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먼저 “안전”을 뜻하는 언어가 됐다.
그리고 정말 그 순간,
첫째의 눈꺼풀이 아주 잠깐 풀렸다.
뜨는 게 아니라—풀리는 정도였다.
아이의 시선은,
산모의 얼굴이 아니라
벽의 모니터 숫자 쪽으로 아주 잠깐 흔들렸다.
정말 잠깐.
하지만 분명히.
딸깍.
삐—.
—다음: 2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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