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화를 디버깅하는 시간
아이들의 수면 시간은 정직하다. 일찍 일어나고 낮잠을 적게 자면 밤에 일찍 잔다. 부모들은 아이가 늦게 잔다고 불평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낮에 편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결국 낮의 편안함에 대한 대가는 밤에 치르게 된다.
오늘 아이를 재우다가 문득 나는 아내에게 약간 화가 났다. 회사를 다닐 때 쉴 틈도 없이 바쁜 와중에 슬럼프까지 겹쳤는데, 아이가 밤늦도록 자지 않아 늘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막상 육아 휴직을 하고 내가 아이를 돌봐 보니 답은 간단했다. 낮에 조금만 열심히 놀아주면 아이는 당연히 일찍 자는 거였다. 결국 아내는 낮에 편하게 지냈고, 그 대가는 내가 밤에 치렀던 셈이다.
물론 아내가 혼자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게 힘들 수는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낮에 유튜브를 틀어놓고 그렇게 열심히 놀아주지 않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 역시 일종의 '인센티브 설계' 문제다. 아이의 밤잠을 내가 재우니, 아내 입장에서는 밤에 아이를 재우는 스트레스가 자신의 몫이 아니다. 그러니 낮에는 편한 대로 키우고, 아이는 낮잠을 푹 자고 에너지가 '풀 충전'된 상태로 저녁을 맞이하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화가 난다. 그렇다고 이걸 따지자니 아내는 토라질 것 같고, 불평하기도 참 애매하다. 그래서 화를 내기보단, 이 화나는 마음을 한번 '디버깅' 해보기로 했다.
이 마음은 기본적으로 약간 어린아이 같다. "나도 고생했으니 너도 고생해라." 90년대생의 기본 마인드인 공평과 공정에 관한 감정이 우선한다. 마치 군대 논쟁과 비슷하다. 내가 갔으니 너도 가라는 식의 논리다.
우리 윗세대 아버지들은 '가부장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남자의 리더십과 책임감이 막중했다. 미디어에서는 무책임한 가장의 모습이 종종 비치지만, 실제 우리 윗세대는 처자식을 건사하는 든든한 가장이었다. 물론 그들의 역할은 '바깥일'에 치중되어 있어, 내가 겪는 '밤잠 재우기' 같은 스트레스는 온전히 어머니들의 몫이었을 테지만 말이다.
반면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는 윗세대처럼 외벌이 형태지만, 육아는 내가 상당 부분을 짊어지고 있다. 물론 이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과거의 아버지들은 권위는 있었을지 몰라도 가족과 친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세대의 아버지상은 '함께하는 육아' 그 자체다. 덕분에 나는 아이들과 사이가 좋다. 예전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으면 예의상 고민하는 척할 뿐 답은 엄마였지만, 요즘은 정말로 엄마냐 아빠냐가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고민거리가 된 듯하다.
나는 이 불공정해 보이는 상황에 종종 화가 나지만, 화난 상태를 방치하면 가정의 불화만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쌓은 이 친밀한 유대감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사실 이 상황은 어느 정도 내가 자초하고 원한 면도 있다.
내가 아내에게 바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오전에 아이를 좀 더 일찍 깨우고 낮잠을 덜 재우는 것. 예전엔 원인을 몰라 불평만 했다면, 이제는 원인이 명확해졌으니 복직 후에도 구체적으로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났는데, 두 달 뒤인 3월부터는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니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아이를 돌보며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렇기에 나는 이 안식년을 계획했고 현재의 경험이 너무나 좋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진정한 아내상은 육아를 완벽히 도맡아 나를 해방시켜 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지금처럼 편안하게 지내며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이면 족하다.
문득 억울한 생각에 화가 치밀었지만, 지금은 좀 정리가 된 듯하다.
화가 나서 다행이다. 화는 나의 영감의 원천이다.
화는 곧 큰 에너지이므로 이를 잘 이용하면 내 생각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는 좋은 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