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내면을 오래 보다 보면
이상한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성격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살아온 이야기까지 전부 다른데,
무너질 때의 모습은
놀랄 만큼 비슷하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버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주저앉고,
누군가는
잘 해내고 있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말이 멈춘다.
그리고 그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질문을 꺼낸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이 질문에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무너지기 전까지
꽤 성실했다.
참았고,
맞췄고,
버텼고,
견뎠다.
그런데 무너지는 순간
사람은 갑자기
자기 자신을 심문하기 시작한다.
마치
무너진 이유가
지금의 상황이 아니라
자기 존재
그 자체가 무너진 것처럼.
가만히 지켜보면
사람은 무너질 때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뒤로도 가지 않는다.
대신
늘 같은 방향으로 돌아간다.
어릴 때 했던 질문,
처음 상처받았던 감각,
설명받지 못한 채 남겨졌던 마음.
그 자리다.
사람은
강해질수록
그 자리를 더 잘 숨긴다.
능력이 생기고,
역할이 생기고,
책임이 생길수록
그 자리는 보이지 않게 묻힌다.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저
조용히 남아 있다가
버틸 힘이 빠지는 순간
다시 열린다.
그래서 무너짐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처음 겪는 고통도 아니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있었던 자리로
되돌아오는 일에 가깝다.
사람이 무너질 때
제일 먼저 잃는 건
의욕도, 용기도 아니다.
기준이다.
“지금의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에 대한 감각.
그 감각이 사라지면
사람은
외부를 찾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말,
누군가의 판단,
누군가의 확신.
무엇이든 좋다.
자기 말고
다른 곳에 있는 무언가.
그래서 무너진 사람은
이상할 만큼
타인의 눈을 많이 본다.
비교하고,
확인하고,
자기 위치를 재려 한다.
그게 없으면
자기가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한 건,
이 모든 과정이
의식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반사에 가깝다는 점이다.
사람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 직전의 단계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생각은
항상 결과로만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나온 생각을 가지고
나중에 이유를 만든다.
사람은 자신을
가장 소중한 물건보다
더 거칠게 다룬다.
자동차는 관리하고,
식물은 돌보고,
동물은 걱정하면서도
자기 마음이
어디에서 다치고 있는지는
잘 보지 않는다.
보지 못한다.
눈은
자기 눈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보아온 것들로만
세상을 해석하고 살아간다.
보지 못한 기준은
있는 줄도 모른 채.
무너진 사람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더 강해지는 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필요한 건
다시 서는 법보다 먼저,
자기가
어디로 돌아와 있는지
조용히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 중일까.
아니면
이미 돌아와 있는 중일까.
다음화는
알면서도 반복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