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이번엔 다르게 할 줄 알았어.”
하지만 돌아보면
달라진 건 거의 없다.
상황만 바뀌었을 뿐,
선택의 방향은 늘 비슷하다.
이상한 일이다.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하면 망가지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 관계가 왜 힘든지도 알고,
그 선택이 어떤 끝으로 가는지도
대략은 안다.
그런데도
비슷한 자리에 다시 선다.
겉으로 보면
의지가 약해 보인다.
판단이 부족해 보인다.
성찰이 모자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전혀 다른 장면이 보인다.
사람은 선택하기 전에
이미 움직이고 있다.
몸이 먼저 긴장하고,
마음이 먼저 기울고,
감정이 먼저 방향을 만든다.
생각은
그다음에 도착한다.
그래서 선택은
결정이라기보다
이미 일어난 일을
정리하는 말에 가깝다.
사람이 반복하는 건
행동이 아니다.
방식이다.
사랑받으려 했던 방식,
버텨왔던 방식,
자기를 지켜냈던 방식.
그 방식이
언젠가는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몸은 그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비슷한 순간이 오면
사람은 묻지 않는다.
“이번엔 다르게 해 볼까?”
자신에게 묻지도 않은 채
이미 움직인다.
익숙한 쪽으로.
견뎌봤던 쪽으로.
살아남았던 쪽으로.
자신도 모르게 형성되었다.
사람이 반복하는 선택에는
의미가 있다.
그건
판단력이 아니라
생존의 흔적이다.
한 번이라도
그렇게 해서 버텼다면,
몸은 그것을
‘가능한 선택’으로 저장한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그 습관이 갱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황은 바뀌었는데,
조건은 달라졌는데,
몸은 여전히
옛 지도를 꺼낸다.
그래서 사람은
같은 결말 앞에서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왜 또 이랬을까.”
하지만 이 질문은
조금 늦다.
이미 몸은
익숙한 길을 다녀온 뒤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
실수 그 자체가 아니다.
“알면서도 반복했다”는
자기 비난이다.
그 순간부터
사람은 선택을 이해하는 대신
자기 자신을 공격한다.
그리고 그 공격은
다음 선택의 연료가 된다.
사람은
달라지기 전에
이해받아야 한다.
왜 그 선택을 했는지보다
왜 그 방식이
아직도 몸에 남아 있는지를.
어쩌면
변화는
새로운 선택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래된 선택이
왜 아직 반복하고 있는지를
처음으로
가만히 바라보는 순간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당신이 반복해 온 선택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고치려 들지 말고,
먼저
알아차려 본 적은 있었을까.
다음 화에서는
이 질문을
조금 더 안쪽으로 가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