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과 서・논술형 평가,
어떻게 물을 것인가

연재 : 역사과 평가 혁신 A to Z ③ 서・논술형

①화(봄호) – 과정중심 평가, 어떻게 할까
②화(여름호) – 역사과 선다형 평가, 무엇을 물을 것인가
③화(가을호) - 역사과 서・논술형 평가, 어떻게 물을 것인가
④화(겨울호) - 수행평가를 다시 생각한다


>> 윤종배 (서울 명일중학교)



1. 서·논술형 평가가 필요한 이유


선다형은 여러 장점과 보완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순 지식을 평가하며 암기 위주의 학습을 조장하는가 하면, 탐구 능력과 고등 사고를 길러주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 대응책으로 서·논술형을 모색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학생들의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신장시키고, 사고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길러줌으로써 지식 정보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방안으로 강조되고 있다.

장점을 꼽아보자면, 응답 반응이 자유롭기 때문에 학생이 자신의 지적 배경에 따라 적절한 자료나 정보를 선택하여 자기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 다양하고 창의적인 생각이 싹틀 수 있다. 내용을 모른 채 추측과 우연으로 답을 맞힐 수 없으므로 학생들이 수업에 더 집중하게 되며, 개념과 원리를 이해한 바탕 위에 자기 논지를 펴기 때문에 고등 사고가 가능하다. 특히 논술형 문제는 논쟁성이 강한 역사과의 특성과도 잘 어울려 토론 수업의 논제를 출제하여 좀 더 심화된 의견을 진술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서·논술형 출제는 현장에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고, 2000년대 초반, 2010년대 초반, 2010년대 후반 등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붐을 이루었다가 퇴조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왜 그럴까? 시험의 객관성을 강조해 온 그간의 관행 탓에 일정하게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서·논술형 출제에 대해 교육 주체들이 모두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내막을 알고 보면 교사는 출제와 채점에 훨씬 공을 들이고도 학부모와 학생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일을 굳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이고, 학생들은 늘 답을 고르는 문제를 풀다가 직접 글을 써야 하니 막막하기도 하고, 훨씬 어렵게 느껴질 것이고, 학부모가 보기에는 맞았다고 생각하는 답을 교사가 틀렸다고 판정하는 데 대해 불만스럽고 석연찮은 느낌이 있는 것이다. 객관식의 대명사가 선다형이라면, 서·논술형은 근본적으로 주관식 시험으로서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수업 중에 배운 내용과 문제의식에 학생의 생각을 더 해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시험이라는 특성을 간과하고 있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일거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듯이 서·논술형 출제도 교육청 단위에서 단기간에 정책적으로 밀어붙이거나 교사 개인 차원에서 의지를 갖고 밀고 나갈 일이 아니다. 지향과 현실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고, 한 단계씩 나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서·논술형의 유형을 잘 파악하여 객관성을 최대한 담보하면서도 학생 저마다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역사과 입장에서 서·논술형 문항의 유형은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요약형, 비판/평가형, 설명형, 대안 제시형 등이다.

요약형은 주어진 자료를 단순히 간추리는 것도 있고, 두 텍스트를 비교하여 요약하는 것도 포함된다. 설명형은 주어진 자료를 해석한 뒤 출제 의도에 맞추어 사건, 개념의 논리적 관계를 풀이한다. 비판/평가형은 요약한 바탕 위에 자료를 활용하여 비판하거나 가치를 매기는 활동을 요한다. 대안 제시형은 어떤 문제에 대한 대안을 내놓거나 자신의 논지를 펼치는 것이다. 차원(개인/사회/국가)이나 영역(정치/경제/사회/문화), 기간(단기/장기) 등을 고려한 대안과 논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약형과 설명형은 서술형으로 출제되는 경우가 많고, 어느 정도 정답의 객관성이 있으며, 비판형과 대안 제시형은 자신의 의견이 많이 들어가므로 논술형 문제로 적합하다. 실제 출제 장면에서는 단순 요약 → 비교(2-3개) → 설명 → 비판 등으로 수준을 나누어 난이도를 조절하면서 시도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문제 유형은 응답 제한형과 응답 자유형으로 나뉘고, 단독 과제형과 자료 제시형으로도 구분한다. 응답 제한형은 분량, 내용 범위, 서술 양식의 제한을 포함한다. 분량 제한은 답안의 길이, 진술 요소의 수, 내용 범위 제한은 특정 키워드 활용, 어떤 측면(예-정치/경제)에서 진술, 서술 양식 제한은 사례를 들어 서술, 서/본/결의 구조를 갖추라는 등의 제한을 두는 것이다. 이에 따라 몇 자 이내로 쓰라든가, 몇 개 이상의 요소를 서술하라든가, 어떤 키워드를 반드시 활용하라든가, 이유/근거를 대라든가, 앞에서부터 몇 개까지만 채점한다거나 하는 조건을 제시한다.

응답 자유형은 응답의 분량, 내용 범위, 서술 양식에 대한 제한이 없이 학생 개인의 능력과 시험시간에만 제약을 받는 형식이다. 서·논술형 문항 출제의 목적과 가장 부합하는 것으로서 학생의 생각과 논지를 잘 알 수 있고, 다양한 해석과 창의적 발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럼에도 채점의 공정성, 용이성, 객관성 등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좀 더 구조화한 문항을 제작해야 한다.

단독 과제형은 자료나 정보 제시 없이 질문에 응답하는 문항으로 응답 자유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출제는 수월하나 답의 반응 폭이 넓기 때문에 채점에는 어려움이 많이 따르는 편이다. 자료 제시형은 문항과 함께 주어진 자료를 분석/해석하여 출제 의도를 고려하여 자신의 답을 쓰는 것이므로 자료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해석의 과정이 필요하므로 학생의 복합적인 사고 능력을 측정하는 데 유리하며, 대체로 응답 제한형의 모습을 띤다.



2. 서·논술형 평가에서 고려할 점


수시로 언급하였듯이 서·논술형 문항과 관련하여 출제보다 더 신경을 쓰는 부분은 공정한 채점이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설득력 있는 채점 기준 제시와 교차 채점, 공동 채점 등으로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아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채점을 위해 필요한 일들이다.

① 학생(답안지) 단위가 아닌 문항 단위로 채점을 해야 한다.

② 답안지를 일차적으로 한번 읽고 난 뒤, 구체적으로 채점한다.

③ 출제자가 채점에도 참여하고, 또 여러 사람이 함께 채점해야 한다.

④ 채점은 충분한 휴식을 취해가며 맑은 기분으로 차분하게 해야 한다

⑤ 답안지에 있는 학생의 성명과 번호를 가리고 채점해야 한다.


서·논술형 문항이 선다형보다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고, 앞으로 지향해야 할 형식이기는 하지만 출제와 채점에 있어서 몇 가지 고려할 점을 짚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논술형의 외피를 쓰지만, 답이 사실상 정해져 있는 문제를 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삼국통일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두 가지 이상 쓰라고 하는 문제를 많이 내는데, 답이 뻔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학생들이 긍정-민족 통합, 다양한 민족문화, 부정-영토 상실, 외세 개입으로 공식화된 답을 쓰는 경우가 많다. 논술형이 서술형으로 둔갑하는 셈이다. 정말로 논술형을 기대한다면, 당시 민중의 입장에서 쓰라든가, 긍, 부정의 알려진 답 외에 본인이 생각하는 의견을 쓰라고 할 필요가 있다. 발해사의 귀속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발해가 어느 나라 역사인지 묻는 경우, 거의 다 우리 민족의 역사라고 답하기 때문에 사실상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해)의 우를 범할 수 있다.

둘째, 서·논술형 문항은 어차피 주관성 띨 수밖에 없는 만큼 채점에 있어서 좀 더 허용적이고 유연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고조선의 8조 법을 통해 당시 사회의 모습을 유추하는 문제를 낼 경우, 사유재산 인정, 노비제도 존재, 화폐 사용 등을 답으로 채점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더하여 도둑질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같은 죄를 지어도 돈 없는 사람은 노비가 되고, 돈 있는 사람은 벌을 피하는 공정하지 못한 면이 있다 등도 충분히 개연성 있는 답으로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객관성을 고려하더라도 수긍할 수 있는 답이라면 교사가 과감히 정답으로 처리해 줄 때, 학생들은 좀 더 창의적인 답을 쓸 수 있을 것이며, 서·논술형 문항의 취지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요컨대 ‘납득 답 = 납득이 되면 답으로 인정함’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셋째, 사전에 루브릭을 작성하여 명확하고 세밀한 채점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 미흡한 점이 있다면 사후에라도 교과 협의를 통해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채점자 내의 신뢰도, 채점자 간의 신뢰도를 높여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는 루브릭과 모범 답안이 매우 유효한 방안이다. 루브릭은 설명적인 채점 기준이므로 교사의 채점에 선명한 잣대가 되며, 학생들이 루브릭을 보고 자신의 결과물을 쉽게 받아들인다는 점을 앞서 논한 바 있다.

루브릭보다 더 미리 확보할 것은 모범 답안이다. ‘확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논술형 문항은 해마다 유사하게 내도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작년에 잘 된 답안을 복사하거나 스캔해서 갖고 있다가 학생들에게 참고용으로 제시하면 채점과 설명이 용이하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교사들이 서·논술형 문항을 내면 낼수록 출제와 채점에 노하우가 쌓여 훨씬 역사를 역사답게 가르치고, 시험 보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로써 문항 출제 시 타당성, 신뢰성, 효율성이 고루 확보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넷째, 서·논술형 문항을 정기고사가 아닌 수행평가 차원에서 낼 필요가 있다. 정기고사는 상대평가의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 채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본질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 수행평가로 내면 교사가 시간을 두고 학생 답을 음미하면서 채점하여 적절히 피드백 할 수 있고, 학생들도 자신의 성취도를 알고, 미흡한 점을 보완하여 다시 채우면 더 나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며, 학부모들도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하고, 학생들의 논쟁적 사고를 한 수준 끌어 올리려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일상에서 연마된 내공과 신뢰를 바탕으로 정기고사에 서·논술형 문항을 출제하면, 좀 더 취지에 부합하고 서·논술형 위주의 평가가 연착륙할 가능성이 높아지리라 본다.

이 대목에서 우리보다 서·논술형 문항 출제에 관한 한, 한발 앞서 있는 유럽 국가의 문제를 살펴보자. 우리의 교육 풍토 및 수업 문화와 매우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를 하기는 어렵지만, 서·논술형으로 어느 정도까지 깊이 있고, 의미 있는 문항을 출제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수는 있을 듯하다. 먼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의 문제이다.

문제를 받아들고 선뜻 답을 할 수 없으나 깊이 생각해보면 몇 마디 할 수 있고, 제대로 답을 쓰려면 평소에 독서와 사색, 토론식 수업과 글쓰기가 선순환을 이루어야 가능한 질문이다. 뒤르켐이나 밀처럼 교사도 작가명과 책 제목은 알지만, 실제로 독파한 경우가 많지 않은 명저들을 텍스트로 삼아 질문을 던지는 것도 참 부러운 대목이다.


독일의 아비투어 문제(영어 논술형)도 새겨볼 지점이 많다.

위의 문제들은 대체로 학생이 인터뷰어나 신문기자가 된다거나 청소년 입장에서 유럽 의회에 건의하는 글, 부모의 개입에 대한 생각 등을 쓰게 하여 매우 현실감 있는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소 추상적인 내용을 학습했더라도 학생 자신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시켜 질문함으로써 단지 점수를 받기 위해 답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성찰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사례로 보는 서·논술형 평가


이제 우리 현실로 돌아와서 기출 문제를 바탕으로 어떻게 출제하였으며, 어느 정도 수정하였는지, 향후 어떤 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 몇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고민해 보자.

이 문제는 수업 중에 이미 다룬 것이며, 활동지의 요점 정리를 약간 변형한 것이어서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문제였으나, 사고력을 키우기보다는 이미 아는 사실을 정확하게 써내기를 요구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산업혁명은 일반사회나 도덕, 기술 과목 등에서도 배우기 때문에 매우 상식적인 답을 쓰게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외양은 서술형이지만, 결과적으로 암기를 요하는 문제였고, 객관식 선다형으로 고르게 하는 것보다 과연 더 좋은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지적을 받았다.

이 문제를 고쳐 볼 방안으로, 자료를 더 제시하고, 좀 더 심층적인 질문을 해보라는 제안이 뒤따랐다. 이를테면 산업혁명 관련 공장 사진, 철도 증설 지도, 철강 생산량 그래프, 대륙 간 무역품의 이동 등의 시각적 자료를 주거나 올리버 트위스트의 소설처럼 당시 상황을 묘사한 작품,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소녀들이 인터뷰 등을 주고, 자료에서 찾아보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산업혁명의 긍・부정을 요약하거나 당시 상황을 추리하게 하는 방식으로 수정해보라는 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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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제국주의 뜻과 문제점,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 비판하기를 목적으로 삼은 것이다. 먼저 사실이나 개념을 짚고, 핵심어를 바탕으로 그 관계를 정리한 다음,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진술하기를 기대한 문항이다. 그러나 출제자가 30점을 배점해 놓고도 학생들이 많이 못 쓸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컸고, 학생들은 서술형 문제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며, 실제로 활동지의 서술형 질문에도 답을 잘 쓰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좀 더 쉽게 핵심을 찾을 수 있게 1)에서는 아주 뻔한 힌트를 주었다. ‘새로운 공업 원료와 상품시장을 확보하고’라는 결정적 단서를 제시하여 손쉽게 제국주의의 개념을 찾아 쓸 수 있게 유도하였다. 사실상 핵심 문장의 앞부분을 보여주었으니 뒷부분만 이어 쓰면 되는 것이었다. 이러려고 서·논술형 문항을 낸 건가 회의도 들지만, 학생들이 엄두가 안 나서 아예 포기하는 것보다는 단서를 충분히 주고 1)번이라도 쓰게 할 요량이었다. 차후에 수정한다면, 단서 없이 제국주의의 개념을 찾아 적으라고 하면 될 터이다.

2)번 질문도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약간 재구성한 것이어서 공부를 좀 한 학생이라면 쉽게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외운 걸 쓰는 것이 아니라 자료를 분석하거나 탐구해서 정리하는 걸 요구하려면, 보기에 제시된 문장에는 독점 자본주의 밖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보기의 문장에 약간이라도 인종주의, 사회진화론, 민족주의에 대한 언급을 하거나 사진이나 그림, 지도 등을 제시하여 이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쓰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3)번의 경우, 학생들이 제국주의를 막연히 ‘나쁜 것’으로 치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인권과 평화의 관점을 문제로 제시하였고, 모범 답안에서는 인권-자유 박탈, 인종 차별, 강압적 지배, 평화-약소국 침략, 전쟁 도발 등을 핵심어로 요구하였다. 제국주의가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것인데, 민주주의가 개인과 일상의 차원에서는 인권의 문제로 다가오고, 국가와 국제적 차원에서는 평화, 반 평화의 문제로 드러나기 때문에 두 가지 관점에서 진술하기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인권과 평화가 학생들에게 뚜렷이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고, 교사가 수업 중에 명확히 개념을 설명한 것도 아니어서 인권과 평화 란에 적은 답이 거의 비슷해져 버렸다.

이를 수정하려면 간략하게 인권과 평화의 개념을 적시하든가, 인권과 평화 중 어느 하나의 관점만 제시하여 진술하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아니면 인권의 관점에서 비판을 하고, 평화를 그르친 사례나 인물을 쓰게 만들면서 차별성을 주는 것도 가능할 터이다. 나아가 학생의 생생한 의견을 쓰도록 하려면, 제국주의로 인해 식민지를 겪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제국주의를 비판해보라는 주문을 할 수도 있겠다. 세계사 영역에 나오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실은 우리의 문제였기에 해볼 수 있는 질문이다. 이밖에도 문항이 5점 아니면 10점으로 된 것은 교사가 채점의 편의를 위해 비중이 다른 질문을 균일하게 취급한 탓이므로 배점을 달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2학기 한국사 출제에서는 앞서 나온 의견을 반영하여 좀 더 가다듬은 문제를 제시하였다. 문항별로, 문항 내에서도 배점을 달리하고 문제 안에 의미 있는 단서를 주어 단순히 암기한 것을 출력하는 일은 줄이고자 하였다. 또 같은 자료에서도 저마다 다른 답이 나오되, 각자의 생각에 따른 근거를 쓰도록 손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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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의 경우, 사실상의 단답형 문제로서 정미의병이라고 쓰면 될 일을 서·논술형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굳이 ‘~라고 한다’라는 예시를 보여주었다. ㉠의 ‘그들’을 묻는 것이 국어시험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2)번은 구식 군대(맥켄지가 보기에는)의 복장으로부터 1907년에 일어난 군대 해산을 추리해 보려는 의도로 질문한 것이다. 여기에 맥켄지가 경기도 양평 부근에서 찍은 의병 사진을 함께 제시하면 학생들이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단서가 될 수 있다.

3)번은 신돌석과 홍범도의 공통점을 찾는 것으로 을사의병 이후 두드러지게 활약한 평민 출신 의병장에 대해 묻는 면도 있고, 의병이 국권 상실 이후에는 독립군으로 활약한다는 점도 함께 생각해 보게 하려는 생각으로 질문하였다. 4)번은 의병의 결기를 느끼면서 무엇이 항쟁의 이유였는지 깊이 생각해 보게 하기 위해 질문한 것이다. 박스 안의 글은 의병항쟁을 다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이 의병들에게 한 말이기도 하고, 영국 수상 처칠의 명언 "싸워본 나라는 다시 일어나도 싸우지 않고 항복한 나라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와도 같은 맥락이다. 비록 패배하더라도 자유를 위해 싸운다는 의병의 마음가짐을 잘 비유하는 대사여서 인용하였다.

앞서 제시한 세계사 문항보다 2학기의 한국사 문항이 좀 더 짜임새 있고, 서·논술형 다운 면모를 갖고 있지만, 이 문제도 문제는 적잖게 있다. 1)의 그들은 ‘1907년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국권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고 나섰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일컫는 말은? 정도로 수정하여 의병 혹은 정미의병이라는 답을 쓰게 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의견이 있다. 2)의 경우는 구식 군대라는 표현 때문에 포졸의 복장을 떠올린다거나 초기 별기군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기에 가급적 사진을 문자 텍스트와 함께 제시해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3)은 의병에 대해 묻고 있지만, 박스의 글과 무관하게 이미 신돌석이 평민 의병장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홍범도 역시 포수 출신의 의병장이라는 것을 배워야 답할 수 있는 것이므로 약간의 암기력 테스트가 된다는 비판이 있었다. 암기를 금기시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논술형 문제로서는 좀 아쉽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4)번의 경우는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민으로 살겠다.’는 감동적인 멘트를 학생들이 되새겨 보게 하려는 의도였으나 국어시험도 아니고 인문과목의 특성상 다른 인터뷰 내용도 음미해 볼만 하기 때문에 제시한 답이 유일한 답은 아니고 유력한 답일 뿐이라는 점에서 학생이 선택한 문장이 설득력 있다면 정답으로 인정해주라는 권유를 받았다.



4. 서·논술형 평가로 한 걸음 더


여기서 문항을 좀 더 정련하기 위해 위의 3번 문항을 다시 가다듬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먼저 위의 의병 인터뷰와 함께 맥켄지가 1907년 무렵 경기도 양평 부근에서 찍은 의병 사진을 제시한 뒤, 다음의 순서로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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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에서는 제시된 자료를 보고 매우 기본적 사실을 확인하는 것을 요구한다. 자료를 정독하고 사진을 집중해서 살피는 것으로 자료 탐구를 시작하는 의미이다. 5가지보다 덜 찾을 수도 있고, 더 찾게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해당 자료의 특성에 따라 다를 것이다. 2)에서 사진과 글을 보고 제목을 단다는 것은 학생 스스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성격을 규정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므로 짧은 문장 혹은 단어 연결로 학생의 생각을 읽는 데 목적이 있다. 3)은 핵심적인 문장을 찾아 글의 논지를 파악한 뒤,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쓰게 하되, 근거를 밝히도록 하여 좀 더 진전된 자신의 생각을 펼치게끔 하려는 것이다. 논지 파악- 자기 주장-이유/근거를 쓰게 하여 주어진 텍스트에 적합한 논리적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이다.

이렇게 되면 서술형과 논술형이 섞여 있는 문항이기도 하고, 아주 기본적인 사실부터 찾아 쓰게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바로 포기하지 않으며, 저마다 제목 달기 정도는 할 수 있으므로 적어도 2)번까지는 답안지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3)번도 핵심 문장을 잘 찾는다면,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한 두 줄 정도는 진술할 수 있으리라 본다. 간혹 근거 없이 주장만 쓸 수도 있으나 자신이 단 제목에 조금만 살을 붙이면 되므로 아예 빈칸으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다르게 출제하는 방법으로 1)번에서 6하 원칙에 따른 언제, 어디서, 누가 등의 기본 질문을 하고, 2)번에서는 제시된 문장에서 핵심어를 5개 추출하고 그를 연결하여 50자 이내로 핵심 메시지를 요약하라고 요구하며, 3)번에서는 2)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근거를 대며 진술하게 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서·논술형 문항에 대한 논의를 마감하면서 냉정하고 어렵고 힘들고 부담스러운 시험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험은 될 수 없는지, 약간의 여운이 남고 교사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례를 소개해 볼까 한다. 이런 일이 국어시험이 아니라 역사시험에서도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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