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도 친정도 없는 미국에서, 부부가 데이트하는 법

팍팍한 미국 육아 속에서 만난 오아시스, '페어런츠 나잇아웃'

by 적응형이방인

해외살이 중 가장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단연 '가족의 부재'다.


육아를 하다 예상치 못한 고비가 닥칠 때면,

종종 아이를 맡기고 부모가 숨통 트일 수 있게 해 주던 곳이 바로 ‘가족‘이었다.


친정이나 시댁에 아이들을 잠시 맡기고 즐기던 짧은 자유 시간, 남편과 단둘이 보내던 오붓한 저녁 식사...

그 평범해 보이던 순간들이 생각보다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든든한 지원군이 없다. 오로지 부부 두 사람의 힘으로 이 모든 과정을 채워나가야 한다.


그 팍팍한 육아 지옥 속에서 내가 발견한 작은 오아시스가 있었으니, 바로 '페어런츠 나잇아웃 (Parents' Night Out)'이다.


실제 아이 프리스쿨에서 보내온 페어런츠 나잇아웃 공지


말 그대로 부모들이 아이를 믿을 수 있는 기관에 맡기고 저녁에 외출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내가 처음 이 프로그램을 접한 곳은 아이가 다니던 프리스쿨이었다.


한 달에 한 번 토요일 저녁, 평소 아이를 돌봐주던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고, 신나는 자유 놀이를 즐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부모들은 오랜만에 부부만의 시간을 갖는다.


몇 시간에 불과한 짧은 자유지만,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이 기회는 부모에게 꽤 큰 숨통을 틔워준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 가는 일은 괜히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수용 연령대는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만 3세부터 12세 정도의 아이들이 대상이 된다.

또한 기관마다 운영 방식이나 안전 관리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부모들이 사전에 충분히 확인하는 것은 필요하다.


알고 보니 이런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꽤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프리스쿨뿐 아니라 YMCA, 키즈짐, 교회, 태권도장, 커뮤니티 센터 등 다양한 커뮤니티 기관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런 문화가 자리 잡은 데에는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미국의 부부중심 가족관이다.

내가 경험한 미국 부부들은 부모 개인의 행복과 부부 관계의 유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모의 행복과 건강한 부부 관계가 결국 가족 전체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믿음이 이 프로그램을 지속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둘째는 미국의 육아 환경이다.

미국은 땅이 넓다 보니 조부모나 친척이 비행기를 타야 할 만큼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가 흔하다. 해외에서 온 이방인만의 사정은 아니었던 것이다. 가족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가정을 위해 커뮤니티 중심의 돌봄 시스템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어린아이를 집에 혼자 두는 것이 상황에 따라 아동 방임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래서 부모가 외출하려면 반드시 적절한 아이의 돌봄 환경이 필요하다.


셋째는 경제성과 신뢰성이다.

미국에서 개인 베이비시터(내니)를 부르면 시간당 20~30달러 정도의 비용이 발생한다. 반면 우리 아이가 다니는 프리스쿨의 페어런츠 나잇아웃의 경우 5시간 기준 아이 한 명 55달러, 두 명 65달러로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이다.


게다가 낯선 베이비시터를 집으로 부르는 것보다, 프리스쿨이나 YMCA처럼 검증된 기관에서 여러 선생님이 함께 아이들을 돌봐주는 시스템이 부모 입장에서는 훨씬 마음이 놓인다.



이 외에도 미국 사회는 커뮤니티가 육아의 짐을 덜어주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예를 들어 커뮤니티 컬리지에서는 부모가 수업을 듣는 동안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캠퍼스 차일드케어(Childcare)'가 운영되기도 하고, YMCA , 헬스장(Gym) 역시 부모가 땀 흘려 운동하는 동안 아이를 돌봐주는 '차일드 워치(Child Watch)' 서비스를 갖춘 곳이 많다.


물론 아이마다 이런 프로그램에 대한 적응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가정에는 이용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작은 프로그램 하나가 있다고 해서 타지에서의 육아가 갑자기 쉬워지는 것도 아니다.

비싼 인건비와 의료비, 가족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환경. 특히 영유아 시기의 해외 육아가 만만치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살아보니, 그 팍팍함 속에서도 부모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작은 시스템과 배려가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페어런츠 나잇 아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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