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맵에는 나오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미국 동네에서 발견한 작은 도서관,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

by 적응형이방인

우리 집 맞은편 마당에는 작은 빨간 나무 상자가 하나 있다. 처음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 나는 그 상자가 당연히 우체통인 줄 알았다.


하지만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문을 열어본 순간, 그 안에는 편지 대신 책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나의 미국 라이프 궁금증 해결사인 이웃집 친구 쿄코에게 물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Little Free Library)야.
이웃들이 안 읽는 책이나 나누고 싶은 책을
가져다 두는 곳이지.
가져가서 읽고 다시 갖다 놓아도 되고,
그냥 가져도 돼.


그날 이후, 그 작은 빨간 상자는 우리 아이들의 하교 길에 빠질 수 없는 참새 방앗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집에 오는 길이면 어김없이 그곳으로 달려가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책이 새로 들어왔는지 확인하느라 바쁘다.


가끔은 이웃집 아이의 이름이 적힌 손때 묻은 책을 보기도 하고, 옆집 할머니의 취향이 듬뿍 담긴 소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상자 안의 풍경은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아이들을 위한 작은 장난감이, 할로윈이 가까워지면 달콤한 사탕이 들어 있기도 했다.

때로는 새 주인을 기다리는 깨끗한 학용품이나 보온 도시락 통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빨간 상자는 단순한 책장이 아니라 이웃들이 추억과 마음을 나누는 작은 통로 같다.


나중에 찾아보니 우리 집 앞 빨간 상자 같은 길가 도서관은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Little Free Library)’라는 운동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2009년 미국 위스콘신에서 한 남자가 책을 사랑하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집 앞에 작은 무료 도서관을 만든 것이 그 출발이었다.


“Take a book, Leave a book.”

책 한 권을 가져가고, 책 한 권을 두고 가는 단순한 규칙.

그 작은 상자는 이웃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졌고, 지금은 전 세계 곳곳에 수많은 작은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운동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놀라는 점은 이 상자가 항상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군가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닐 텐데 책은 늘 새로 채워지고 먼지 하나 없이 관리되어 있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이 상자가 놓인 마당의 집주인이 아침저녁으로 직접 책들을 정리하고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이웃과 나누고, 내 동네를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는 누군가의 작은 다정함일 것이다.


가끔 내게 미국은 차갑고 서로 거리를 두는 나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웃이라 해도 서로의 사생활을 깊이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마당과 울타리 안에서 조용한 평화를 지키는 곳.
하지만 그런 적당한 거리감 속에서 뜻밖의 온기를 발견하게 되는 곳 또한 이곳이다.




언젠가 나도 집 정리를 하다 내가 읽던 책 몇 권을 그 상자에 살며시 넣어두었다. 아이들이 보던 한국어 그림책과 내 책도 몇 권 섞여 있었다.


누가 이 낯선 글자의 책을 가져가긴 할까?


며칠 동안 창밖을 슬쩍 내다보며 누가 가져가는지 괜히 지켜보던 설레는 마음.

그리고 며칠 뒤, 그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묘한 기쁨은 꽤나 컸다.


누군가를 위해 내 마당의 한 뼘을 내어주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에 보답하듯 책장을 조용히 정돈하는 이웃의 손길.

타지에서의 삶이 가끔은 외롭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런 작은 풍경 덕분에 이곳이 조금씩 익숙해진다.


오늘도 우리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에는 맞은편 집에서 온 낡은 그림책 한 권이 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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