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회 회사 밖에서 처음 마주한 풍경
26일 차. 이름 없이 떠난 여행
임원 해임 통보를 받은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분노와 울분이 번갈아 가며 가슴을 두드리던 시기였습니다.
그 무렵, 가족뿐 아니라 선·후배님들까지 공통적으로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여행을 다녀오라”는 말이었습니다.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에서 사방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모르게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졌습니다.
결국 해외여행 상품을 충동적으로 구매했습니다.
떠날 곳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시기의 마음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출발일이 가까워지자 망설임이 찾아왔습니다.
‘괜한 짓을 한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취소해야 할까.’
고민 끝에,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계획대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출발 당일 새벽,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일행들이 하나둘 모여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습니다.
굳이 제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소개 시간에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회사원입니다. 직장은 서울에 있고, 연차를 사용해 왔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녁에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맥주를 마셨습니다.
그중 한 분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직장과 공부를 병행하며 사업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태도,
그 담담한 자신감이 부러웠습니다.
저는 회사명과 담당 업무만 간단히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상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해외여행을 와서 좋았던 점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행들 모두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회사가 전부일 것이라 생각했던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그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무 좁은 곳에서만 세상을 보고 있었구나.’
회사가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던 제 자신을,
그제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