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회 내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밤
27일 차. 회사 밖의 사람들
여행지에서 일행들과 밤에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오간 이야기는 여행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네 명이 모이자 분위기는 한결 느슨해졌고,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담하게 오갔습니다.
역시 한국인들의 정서는 비슷했습니다. 여행 중에도 몇 년생인지부터 확인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열이 정리되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네 명 중 막내였습니다. 말을 아끼고 심부름으로 제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그분들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실패했던 경험,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 위기를 넘겼던 순간들을 특별한 포장 없이 이야기했습니다. 저보다 연배가 있는 분들이었는데, 그 점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성공담조차 과장되지 않았고, 실패담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말투에는 자랑도 변명도 없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계산할 때도 분위기는 같았습니다. 음식값도 망설임 없이 바로 계산했습니다. 그 모습마저 과장 없이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지만, 마음 한편이 조용히 불편해졌습니다. 그 불편함은 그들이 아니라, 제 쪽에서 생겨난 감정이었습니다.
저는 주로 듣는 쪽에 머물렀습니다. 질문을 던지고, 상대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역할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해야 할 차례가 오면 회사 이름과 담당 업무만 짧게 말하고 대화를 넘겼습니다. 제 상황을 굳이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업을 하는 분들 사이에서 저의 이력은 특별할 것도, 내세울 것도 아니었습니다.
더 말하지 않아도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갔습니다. 그 사실이 편안하면서도 동시에 마음에 걸렸습니다.
회사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대화가 이어진다는 점은 저를 안심시키는 동시에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회사라는 틀로만 저를 설명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함과 역할이 빠지면, 저는 무엇으로 나를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처음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누구의 이야기가 부러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말을 꺼내려다 멈추게 되는 순간들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회사 밖에서의 저는 생각보다 조용했고, 말수가 적었으며, 아직 정리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날 밤, 제 머릿속에 남아 있던 것은 답이 아니었습니다.
‘회사 말고, 나는 무엇을 가지고 살아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