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by 베풂과 행복

Epilogue


임원 해임 통보를 받고 나서, 저는 한동안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많이 불안정했습니다. 억울함과 섭섭함이 번갈아 가며 저를 흔들었고, 때로는 분노를 조절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함께 일했던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가족, 친인척, 직장 선후배, 친구, 지인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창피했습니다.

더 낯설었던 것은,

한낮에 아파트 주민을 마주치는 일조차 피하고 싶어 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모임 자리에서
“저는 백수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내뱉고 나서야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불안을 잊기 위해 무엇인가를 채우려 했습니다.
자동차, 피트니스센터, 학원, 여행, 취미활동.
절반은 거절했지만, 절반은 선택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결정들 대부분이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한 사찰의 주지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팽풍차를 내어주시며 스님은 번민을 억지로 밀어내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제가 너무 서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상처가 아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고통을 회피하지도, 억지로 없애려 애쓰지도 말자.
물처럼 흘러가게 두자.


그날 이후, 저는 숨어 있거나 방향 없이 바쁘게 움직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을 만나며 관계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아직 모든 것이 정리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도망치고 있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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